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내명부의 세자궁 소속 궁관이다. 내명부는 내관(內官)과 궁관으로 구성된 조직인데, 세자인 동궁을 위한 조직은 품계를 왕보다 낮추어서 마련하였다. 이 중 내관은 세자의 후궁이며 궁관은 여관(女官)으로 지칭되던 궁녀 조직이다. 장서(掌書)는 종8품 궁관으로 세자궁의 서적을 관리하고 교육과 학문을 도왔으며, 명령의 전달을 담당하였다. 종7품 장정(掌正)과 함께 수규(守閨)를 상관으로 하여 직무를 수행하였다.
[담당직무]
장서의 주요 임무는 세자궁 내의 서적을 관리하여 교육과 학문을 보조하였으며, 세자 혹은 세자빈의 명령을 전하여 알리는 역할이었다. 주로 세자빈과 관련된 문서, 교육, 명령의 전달을 담당하였다. 의례에서는 주로 문서와 관련된 직임을 담당하였다. 세자빈을 책봉하는 책빈례(冊嬪禮)에서 장서는 교명(敎命)·책함(冊函)·인수(印綬)를 들고 의식에 참여하였다. 장서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교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수칙(守則)이 이를 세자빈에게 전해줄 수 있도록 전달해주었다. 이외에도 책빈례에 참석하는 세자의 내관, 즉 양제(良娣)와 양원(良媛) 등 후궁을 인도하여 세자빈에게 절을 하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세자빈이 사친(私親)의 상을 당하여 상복을 벗는 의식을 진행할 때 의식의 진행을 장서가 담당하였다. 세자빈이 꿇어앉아 곡을 하는 것, 다시 일어나서 곡을 그친 후 양제 이하가 곡을 하고 그치는 과정이 모두 장서의 구호로 진행되었다[『영조실록』 8년 10월 23일].
[변천]
동궁의 내관 제도는 내명부 내관과 궁관 제도가 만들어진 후인 1430년(세종 12)에 마련되었다. 이때 종 8품 1명으로 정해졌다[『세종실록』 12년 윤12월 16일]. 변동 사항 없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