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내시부는 궁궐 내 음식물을 감독하고, 궁궐의 청소를 담당하며, 궐문을 지키고, 왕명을 출납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관서이다. 관원은 환관(宦官)으로 구성되었다. 호(弧)는 나무로 만든 활을 의미하므로 상호(尙弧)의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궁궐에서 사용되는 활을 관리하는 임무 등을 담당하였다. 정원은 4명이다.
[담당직무]
상호 4명은 체아직(遞兒職)으로 5가지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대전의 응방(鷹坊)·궁방(弓房)을 담당하였다. 응방은 수렵을 위해 매를 키우고 매사냥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으며, 궁방에서는 활과 활촉, 화살을 만드는 일과 이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였다. 임금이 사용하던 활과 화살을 만드는 곳은 내궁방(內弓房)이라고 하는데, 상호는 이곳의 일을 관리하였던 것이다[『문종실록』 1년 9월 3일]. 이외에 왕비전의 주방(酒房)에서 필요한 술을 빚고 이를 관리하였으며, 태조와 태종의 위패를 봉안한 문소전(文昭殿)에서 시중을 드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세자궁에서 교대 없이 근무하는 직무도 담당하였다.
상호의 주된 직무는 응방과 궁방의 일을 관리하는 것이었던 만큼 이를 통해 사우사단의(射于射壇儀), 조선후기에는 대사례(大射禮)에서 국왕이 사용하는 활과 화살을 준비하였다. 또한 강무의(講武儀)가 시행될 때도 매와 활·화살을 준비하였다. 정조대 이후로는 종묘와 영녕전 춘·추향대제 섭사(攝祀)에 궁위령(宮圍令)으로 차출되었다. 이때 상호는 영녕전(永寧殿) 섭사에 참여하였다.
[변천]
조선 건국 후 문무 관제를 정비하면서 별도로 내시부 관제를 설치하고 환관직으로 삼았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