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조선왕조 때 사옹원(司饔院)에 소속된 반찬(飯饌)과 그 밖의 음식물을 맡아보던 천구(賤口) 신분의 노자(奴子).
[개설]
반감(飯監)의 신분은 궐내(闕內) 자비인[差備人]으로 천구이지만, 음식물을 맡아보는 다른 차비인들을 관리,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1485년(성종 16)에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6구(口)로 규정하였다.
[담당직무]
어선(御膳)이란 신하가 음식 재료를 갖추어 조리하여 왕·왕비·왕세자에게 진상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옹원은 바로 이 어선과 대궐 안의 빈객(賓客)에게 음식을 주는 일을 맡은 곳이다. 반감은 사옹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좌우 양번으로 번차(番次)하여 근무하는 궐내의 차비인이지만, 별사옹(別司饔)·탕수색(湯水色)·상배색(床排色)·적색(炙色)·반공(飯工)·포장(泡匠)·주색(酒色)·다색(茶食)·병공(餠工)·증색(蒸色)·성상(城上)·수공(水工) 등과 같은 조리 종사 차비인들을 관리, 감독하였다. 반감은 사옹원에서 근무하는 자들이지만, 국가적 행사인 연향 등이 있을 때에는 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 등에 차출되었다.
[변천]
사옹원은 1392년(태조 1)에 설치한 사옹방(司饔房)을 1467년(세조 13)에 개편한 이름이다[『세조실록』 13년 4월 4일]. 1895년(고종 32)에 궁내부 소속으로 둔 전선사(典膳司)로 고칠 때까지 유지되었는데 전선사 이후 수라간에 두었던 숙수(熟手)들의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됨에 따라 사옹원에 두었던 차비인 제도도 없어졌다[『고종실록』 32년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