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의 의장물은 전정(殿庭)에 배치되거나 혹은 노부(鹵簿) 행차 시 일정한 배열의 순서가 있었다. 이러한 의장물의 배열순서는 가장 앞에 홍문대기(紅門大旗)를, 가장 뒤에 후전대기를 세우는 것이었다. 왕의 행차 시에는 의장대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시위 병력도 동원되었는데, 이러한 시위 병력들 사이에서 의장물은 모두 홍문대기와 후전대기 사이에 위치하였다. 요컨대 왕 행차의 일반적인 모습은 ‘시위 병력-홍문대기-일반 의장물-왕-후전대기-시위 병력’의 순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후전대기는 보통 2기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가장 큰 규모의 대가의장(大駕儀仗)-대가노부(大駕鹵簿)와 다음 규모인 반장의장(半仗儀仗)-법가노부(法駕鹵簿) 시에 각각 사용되었다. 가장 작은 규모의 소장의장(小駕儀仗)-소가노부(小駕鹵簿) 시에는 후전대기가 사용되지 않았다. 여타의 의장물들이 2기가 사용될 경우 그 모양새가 같았던 반면, 후전대기는 2기의 모양새가 서로 달랐다. 즉 하나는 청룡을 그려 넣었고, 또 하나는 거북과 뱀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실제 노부 규정에서는 모양이 다른 후전대기 2개 중 어느 것을 어떻게 설치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보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다.
[연원 및 변천]
중국의 옛 의장제를 설명하고 있는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 『통전(通典)』, 『문헌통고(文獻通考)』, 『대명집례(大明集禮)』 등에서는 황제의 의장으로 홍문대기나 후전대기는 보이지 않는다. 또 의장물 배치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기(旗)나 혹은 다른 의장물 역시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대명집례』에는 명대에 사용되었던 문자기(門字旗)와 현무기(玄武旗)가 보이는데, 이들이 각각 의장의 맨 앞과 맨 뒤에 배치되고 있어, 이것이 조선의 홍문대기 및 후전대기의 역할을 수행한 의장기였다고 판단된다.
한편 고려시대의 의장을 전하는 『고려사(高麗史)』 「여복지(輿服志)」의 의위조 및 노부조에는 각각 홍문대기 및 후전흑대기가 나타난다. 고려시대의 경우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의장물의 가장 앞에 홍문대기를, 가장 뒤에는 후전흑대기를 세우고 있었다. 다만 홍문대기의 경우 대개 2기를 사용한 반면, 후전흑대기는 의장 및 노부의 규모에 따라 달라졌는데, 2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4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후전흑대기가 조선시대 의장 정비 과정에서 후전대기로 변한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
후전대기는 사각형에 불꽃 모양이 그려진 화염각(火焰脚)이 달린 모양으로 바탕은 흑색이었다. 후전대기 2기는 서로 문양이 달랐는데, 하나에는 청룡과 구름 문양[雲氣]을 그려 넣었고, 청색·적색·황색·백색으로 채색하였으며, 또 하나의 기에는 현무와 구름 문양을 그렸다. 모두 청색·적색·황색·백색으로 채색하였다[ 『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 노부 노부의 예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