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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개최되는 제례로 유형과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의례이다. 조선시대의 국가 오례 중 길례(吉禮)에 속하며,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되는 조선시대 국가 제사 체계 중 등급이 가장 높은 대사에 해당하였다.
유교 윤리의 핵심은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으로 집약될 수 있는데, 이 삼강오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효(孝)였다.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통시대에 매우 중시되었던 효의 실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제사였다. 즉, 돌아가신 부모와 선조에 대해 살아계실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림으로써 효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종묘 제사는 국왕이 자신의 선조인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통로였다. 따라서 종묘는 제사를 통해 효 윤리가 실현되었던 유교적 문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종묘대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 지냈다. 납제사는 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臘日)에 지내는 제사였다. 미일은 간지에 미(未) 자가 들어가는 날이다. 그 밖에 매달 초하루와 보름, 정월 초하루,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날에도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수시로 올리는 제사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홍수, 가뭄, 질병, 병충해, 전쟁, 자연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종묘에서 기도(祈禱)하였다. 국왕의 거둥과 책봉(冊封), 관례나 혼례 등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종묘에서 고유제(告由祭)를 행하였다. 또 천신(薦新)·천금(薦禽) 등의 절차도 있었다. 천신은 새로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당에 올려 조상에게 감사하는 뜻을 드리는 의식이다. 천금은 사냥해서 잡은 짐승을 사자(使者)를 보내서 올리는 의식이다.
[연원 및 변천]
중국의 종묘 제도가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은 삼국시대에 그 시기가 처음으로 확인된다. 이후 고려, 조선에서 종묘 제사는 국가의 여러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상실되면서 종묘의 위상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종묘 제례는 명맥만 유지되는 정도였다가, 1969년부터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을 중심으로 한 종묘제례보존회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매년 양력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한 차례 봉행되고 있다.
현재 종묘가 남아 있는 국가는 중국, 베트남이다. 두 나라는 공산국가가 되면서 유교 문화가 파괴되었고, 그로 인해 종묘 제례를 지내지 않아 종묘 제례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1년에 한 번이지만 종묘대제를 지냄으로써 그 원형을 잘 보존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종묘 제례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개최되는 제례로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의례이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2006년부터 국제 문화 행사로 격상되어 거행되고 있으며, 2008년에 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통합되었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향사(享祀) 전 국왕의 7일간의 재계(齋戒)를 시작으로, 향사 3일 전에 향사에 소용되는 각종 물품을 설치하는 진설(陳設), 향사 1일 전의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궁을 나오는 거가출궁(車駕出宮), 희생 제물의 상태를 살피는 성생기(省牲器), 향사 당일의 세 번 향을 피어올리고 신령의 강림을 바라며,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뿌리고 폐백을 올리는 신관(晨祼), 삶은 고기를 올리는 궤식(饋食), 신위에 초헌관(初獻官)이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초헌(初獻), 신위에 아헌관(亞獻官)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亞獻), 신위에 종헌관(終獻官)이 마지막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終獻), 복주로 올린 술을 마시는 음복(飮福), 국왕이 궁으로 돌아오는 거가환궁(車駕還宮)의 순서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