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선과첩(禪科帖)

서지사항
항목명선과첩(禪科帖)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선과첩(禪科牒)
관련어선과(禪科), 비변사(備邊司), 도첩(度牒), 의승(義僧), 임진왜란(壬辰倭亂), 휴정(休靜), 유정(惟政)
분야문화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임진왜란 당시에 공을 세운 승려들에게 내려 준 승려 자격증.

[개설]
선과첩(禪科帖)은 조선 선조 연간에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의승군(義僧軍)에게 포상으로 지급한 문서로, 도첩(度牒)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명을 받은 도총섭(都摠攝) 휴정(休靜)은 근왕(勤王)의 기치를 내걸고 의승군을 모집하여 전공을 세우고 성을 수축하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의승군이 여러 가지 활약을 하면서 승군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생긴 조정에서는 1593년(선조 26)부터 전쟁에서 공을 세운 승려들에게 선과를 내려 주기로 하였다. 이때 선과를 주면서 발급해 준 문서가 선과첩이다.

선과는 본래 승려들의 신분을 인정해주는 과거 시험이었는데, 전쟁 당시 군공을 세운 일반인들에게 공명첩을 발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려들에게 선과첩을 발급해 주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적의 목을 벤 승군에게 선과첩을 주도록 하였다[『선조실록』 26년 6월 29일].

선과첩은 비변사(備邊司)에서 발급했는데, 그 당시 승군을 이끌고 있던 도총섭 휴정과 총섭(摠攝) 유정(惟政), 의엄(義嚴) 등에게 선과첩을 나누어 주게 하여 승군을 수월하게 모집하고 통솔할 수 있도록 하였다[『선조실록』 26년 7월 19일] [『선조실록』 29년 12월 5일]. 또한 선과첩을 발급해 주고 군량을 모으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9년 12월 8일]. 한편 전쟁으로 인해 인력이 부족해 한양과 지방에 쌓여 있는 시체를 처리하기 어렵게 되자, 역시 승려들을 모집하여 시체와 유골을 잘 묻어 준 경우 선과를 주는 것으로 포상하려 하였다[『선조실록』 26년 10월 2일]. 이러한 선과첩은 도첩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승려의 자격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증이 되어 도첩을 대신하였다. 승려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그 반대급부로 출가자로서의 신분을 인정하는 이러한 방법은 조선시대 후기 불교 시책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 국사편찬위원회 편,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두산동아, 2007.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 이장희, 「임진왜란 중 의승군의 활동에 대하여」, 『사명당 유정』, 지식산업사, 2000.

■ [집필자] 강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