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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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僧侶)

서지사항
항목명승려(僧侶)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사문(沙門), 중(衆), 출가자(出家者)
관련어구족계(具足戒),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사부대중(四部大衆), 화상(和尙), 화합중(和合衆)
분야문화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불교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출가 수행자.

[개설]
승려는 불교에 입문한 다섯 종류의 출가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불교의 대중은 크게 재가자와 출가자로 구분할 수 있다. 재가자는 다시 남자 신도인 우바새와 여자 신도인 우바이로 나뉜다. 그에 비해 출가자는 10계(十戒)를 받은 나이 어린 남자 수행자 사미(沙彌)와 여자 수행자 사미니(沙彌尼),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수행승 비구(比丘)와 여자 수행승 비구니(比丘尼), 사미니와 비구니 사이의 단계에 있는 식차마나(式叉摩那) 등 다섯 종류로 나뉘는데, 이들을 통칭해 출가오중(出家五衆)이라 부른다.

[내용 및 특징]
승려의 ‘승(僧)’은 산스크리트어 ‘상가(saṃgha)’의 음역어인 승가(僧伽)를 줄인 말이다. 승가는 화합(和合) 또는 대중(大衆)을 뜻하며, 화합중(和合衆)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승려를 다소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는 ‘중’이라는 표현은 ‘중(衆)’에서 음을 따온 것이다. 또한 승려는 사문(沙門)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문은 산스크리트어 ‘쉬라마나(śramaṇa)’를 음역한 말이다.

불교 교단은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성된다. 남자 출가자인 비구, 여자 출가자인 비구니, 남자 신도인 우바새, 여자 신도인 우바이가 그것이다. 초기 불교에서 승가는 이들 사부대중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었으나, 이후에는 출가 수행자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출가 수행자는 7세 이상 20세 미만의 남자 수행자 사미와 여자 수행자 사미니, 구족계로 250계를 받은 남자 수행승 비구와 348계를 받은 여자 수행승 비구니, 사미니와 비구니 사이의 단계에서 수행하는 식차마나 등 다섯 종류로 나뉘는데, 이들을 출가오중(出家五衆)이라 부른다.

불교 최초의 승려는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설법을 베풀어 제자로 받아들인 교진여(憍陳如) 등 5명의 수행자이다. 그 뒤 사리불(舍利弗),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 마하가섭(摩訶迦葉) 등 10대 제자가 승가의 일원이 되었다. 최초의 비구니는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사파제이다. 그녀는 석가모니가 고향인 카필라성에 오자 세 번이나 찾아가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석가모니가 바이살리의 중각강당에 머무를 때 석가족 여인 500명과 함께 스스로 머리를 깎은 다음 황색 옷을 걸치고 찾아갔다. 이를 본 아난(阿難)이 석가모니에게 다시 세 번을 간청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나이 어린 출가자인 사미와 사미니는 10계를 받는다. 10계는 ① 살생하지 말 것, ② 도둑질하지 말 것, ③ 음행하지 말 것, ④ 거짓말하지 말 것, ⑤ 술 마시지 말 것, ⑥ 꽃다발을 사용하거나 향을 바르지 말 것, ⑦ 노래하고 춤추거나 악기를 사용하지 말며 가서 구경하지도 말 것, ⑧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 것, ⑨ 제때가 아니면 먹지 말 것, ⑩ 금은 보물을 지니지 말 것 등이다. 사미니의 10계는 열 번째 조항이 시집가지 말라는 것으로, 사미의 10계와는 차이가 있다. 한편 조선시대의 사미는 5계를 받았는데, 10계 가운데 앞의 다섯 조항을 말한다.

사미는 나이에 따라 셋으로 구분한다. 7세부터 13세까지는 구오사미(驅烏沙彌)라 하는데, 음식을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를 쫓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원래 사미가 될 수 없는 연령이지만, 예외적인 경우에는 인정한다. 14세부터 19세까지는 법도에 맞게 수행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의미에서 응법사미(應法沙彌)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미라 하면 이들을 가리킨다. 20세 이상 70세까지는 명자사미(名字沙彌)라 한다. 이들은 나이로는 비구여야 하지만,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사미라 부른다. 사미는 만 20세가 되면 구족계로 250계를 받고 비구가 된다.

사미니는 20살이 되면 곧바로 구족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2년 동안 식차마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식차마나가 지켜야 할 계율은 4근본계(四根本戒)와 6법계(六法戒)이다. 4근본계는 ① 음행하지 말 것, ② 도둑질하지 말 것, ③ 살생하지 말 것, ④ 허황된 말을 하지 말 것 등이다. 6법계는 ① 불순한 마음으로 남자와 몸을 맞대지 말 것, ② 남의 금전을 훔치지 말 것, ③ 축생의 목숨을 함부로 끊지 말 것, ④ 작은 거짓말도 하지 말 것, ⑤ 끼니때가 아니면 음식을 먹지 말 것, ⑥ 술을 마시지 말 것 등이다. 식차마나로 지내는 동안 허물이 없으면 구족계로 348계를 받고 정식으로 비구니가 된다.

승려는 원칙적으로는 한 장소에 거처를 정하여 머무르지 않고 유행(遊行)하면서 걸식한다. 그런 까닭에 비구에게 허용된 재산은 3벌의 가사, 밥그릇, 머리 깎는 삭도, 바늘, 띠, 헝겊 등의 육물(六物)이 전부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4개월의 우기(雨期) 중 3개월 동안은 우안거(雨安居)를 위해 한곳에 거주하였다. 이러한 관습이 우리나라에는 여름과 겨울의 안거 전통으로 남아 있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이고,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이다.

불교에 귀의하려는 사람은 인종이나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출가를 허락받을 수 있다. 출가하려는 사람은 먼저 스승으로 모실 화상(和尙)을 구한다. 화상은 출가자를 위해 삼의(三衣)와 발우(鉢盂)를 마련해 주고, 계단(戒壇)에서 10명의 비구가 인정하는 가운데 구족계를 받도록 해 준다. 단, 부모의 허락을 얻지 못한 사람, 빚이 있는 사람,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중인 사람 등 구족계를 받을 수 없는 20여 가지 조건에 대해 심사한 뒤 수계를 한다. 수계 의식에 참여하는 10명의 비구 가운데 수계 법사를 전계사(傳戒師), 계문을 읽고 그 의미를 가르쳐 의식을 진행하는 비구를 갈마사(羯磨師), 수계 의식을 가르치는 비구를 교수사(敎授師)라 한다. 구족계를 받은 승려는 세속의 나이를 버리고, 출가한 때부터 법랍(法臘)을 헤아린다. 따라서 나중에 출가한 사람은 먼저 출가한 승려를 공경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비구는 법랍에 따라 셋으로 구분한다. 구족계를 받은 뒤 20년까지를 하좌(下座)라 하고, 20년 이상을 중좌(中座), 40년 이상을 수좌(首座)라 한다.

[조선시대 승려 문파]
조선초기 불교계에는 11개 종파가 있었지만 1407년(태종 7)에 7개 종파로 축소되었다가 1424년(세종 6)에 선종과 교종, 2개 종파로 통폐합되었다. 그리고 명종대 문정왕후와 보우(普雨)에 의해 승과(僧科)가 실시되는 등 잠시 불교가 부흥하기도 했으나 문정왕후가 죽은 뒤로 불교는 국가 제도에서 배제되었다. 이후로는 사실상 국가가 공인한 종파가 없어졌고 내용적으로는 선종으로 통폐합되었다. 선종 전통의 불교계는 조선후기에 문파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청허휴정(淸虛休靜)의 문파와 부휴선수(浮休善修)의 문파로 양분되었다.

청허문파는 다시 사명유정(四溟惟政), 정관일선(靜觀一禪), 소요태능(逍遙太能), 편양언기(鞭羊彦機) 등 4대문파로 나뉜다. 사명유정의 문하에서 송월응상 → 허백명조로 이어지는 계보가 형성되었고, 정관일선의 문하에서 임성충언과 운곡충휘의 계보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소요태능의 문하에서 해운경열과 침굉현변 등이 나와 호남 일대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편양언기의 문하에서는 풍담의심, 상봉정원, 월담설제, 월저도안 등이 배출되어 전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부휴문파는 순천 송광사에 정착하여 호남 일대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부휴선수의 제자인 벽암각성이 병자호란 때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서 활약하였고 그 문하에 취미수초와 백곡처능이 나왔다. 취미수초는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그 제자인 백암성총은 호남 일대에서 활약하며 송광사 보조지눌의 유풍을 진작시키고 많은 경전을 간행하였다. 백곡처능은 현종대에 도성 안의 인수원과 자수원을 혁파하자 상소를 올려 억불책을 비판하였으며, 팔도도총섭에 임명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 『산사략초(山史略抄)』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 히라카와 아키라 저, 이호근 옮김, 『인도불교의 역사』, 민족사, 1994.

■ [집필자] 이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