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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천하가 태평할 때 하늘에서 내린다는 단 이슬, 혹은 불교에서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하는 말.
[개설]
유교에서는 태평성대에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을 감로(甘露)라 하였고, 불교에서는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감로에 비유하였다. 예를 들면 부처가 지옥에 있는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감로도(甘露圖)라고 한다. 다만, 감로가 중생의 고통을 제거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의미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하늘에서 감로가 내리면 그것을 왕에게 진상하고 축하의 전문(箋文)을 올렸다.
[내용 및 변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감로는 산스크리트어 ‘아므리타(amṛta)’를 한역(漢譯)한 말이다. 고대 인도에서 아므리타는 ‘죽지 않는다’는 의미로, 영생을 가져다주는 신령스런 약을 지칭하였다. 꿀처럼 단 이 약을 마시면 신이 된다고 믿었다. 불교에서 아므리타는 부처의 가르침에 비유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뜻하였다. 사람의 고통을 치료하고 장수할 수 있게 해 주는, 도리천에서 내리는 비로 해석되어 감로라고 한역되었다. 그래서 불화(佛畵) 가운데 감로도는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감로와 같은 법문[甘露法]을 베풀어 깨닫게 한다는 의미에서, 부처가 지옥에 있는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 유교에서 감로는 ‘하늘에서는 단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물이 솟아난다[天降甘露 地出醴泉]’는 『예기(禮記)』의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태평한 시대에 하늘에서 상서(祥瑞)를 보여 주기 위해 내리는 단 이슬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감로가 내리면 그 지역의 감사(監司)가 왕에게 이를 바치고, 신하들은 축하 전문을 올렸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세조대에 감로가 내리는 등의 이적이 자주 발생했는데, 『세조실록』에는 궁궐에 감로, 서운(瑞雲), 우화(雨花) 등이 내려 신하들이 하례를 올렸다는 기사가 40여 차례 등장한다[『세조실록』 12년 3월 22일]. 또한 사찰에서 왕실이 주관하는 법회를 개최할 때는 사리가 분신하고, 경복궁 후원에 감로가 내리는 등의 이적이 나타나기도 했다[『세조실록』 13년 4월 7일]. 세조대에 이같은 이적 현상이 자주 나타난 것은 정통성이 취약했던 세조가 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설상의 상서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