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출가한 뒤 승과(僧科)를 보지 않고 수행 중인 승려를 참학(參學)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1084년(고려 선종 1)에 구산문(九山門)의 참학승도(參學僧徒)가 진사(進士)의 예에 따라 3년에 한 번 선시(選試)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참학은 도첩을 받고 출가를 하였으나 아직 승과를 치르지 않은 승려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참학은 고려시대의 금석문에서도 확인된다. 1188년(고려 명종 18)에 작성된 「용문사중수기(龍門寺重修記)」 음기(陰記)의 사법제자(嗣法弟子) 명단에는 중대사(重大師)-입선(入選)-참학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다. 또한 일연(一然)이 입적한 지 6년이 지난 1295년(고려 충렬왕 21)에 왕명으로 일연의 하산소(下山所)인 인각사에 인각사 보각국존정조탑비(麟角寺 普覺國尊靜照塔碑)를 세웠는데, 이 비석의 뒷면에도 대선사(大禪師)-선사(禪師)-수좌(首座)-산림(山林)-삼중(三重)-대선(大選)-입선-참학의 순서로 문도가 나열되어 있다.
조선초기인 1393년(태조 2)에 건립된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 大智國師碑)와, 그 이듬해인 1394년(태조 3)에 세워진 청룡사 보각국사비(靑龍寺 普覺國師碑)에도 참학이 등장한다. 대지국사비에는 대선사-선사-중덕(中德)-대선-운수(雲水)-참학, 보각국사비에는 대선사-선사-대선-운수-참학의 순서로 문도가 나열되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초기까지 ‘입선’은 승과 본 시험에 앞서 선종과 교종에서 각각 실시하는 일종의 예비 시험에 합격한 것, 또는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는 용어였다. 이로 미루어 참학은 사미(沙彌) 단계를 지나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는 선과(禪科)에 참여하지 못한 승려에게 참학입선첩(參學入選帖)을 발급했다. 한편 명종대 왕실원당의 주지(住持)와 지음(持音)은 해당 원당을 비롯해 인근 사찰까지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명종실록』 6년 8월 13일]. 이때 주지에는 반드시 승과를 거친 승려를 임명했으나, 지음은 참학승 가운데 정했다고 한다[『명종실록』 7년 4월 28일]. 이러한 기록을 통해 조선전기의 참학승은 사미 단계를 거쳐 구족계를 받았으나 승과를 보지는 않은 승려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출가를 인정받은 승려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