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연장(鍊匠)은 연정장(鍊正匠), 연마장(鍊磨匠) 등으로 불리었는데, 경공장(京工匠)으로는 군기감(軍器監) 소속의 장인이었다. 연장은 야장이 화살촉 모양을 만들면 이를 단련하고 날카롭게 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중앙의 경우에는 별도의 연장이 존재하였지만 지방에서는 다른 장인이 그 역할을 하였다.
[담당 직무]
중앙관청에 소속된 연장은 주로 화살 제작에 동원되었다. 군기시(軍器寺)에서는 연례적으로 화살 제작을 10월에 하였는데, 이때 연장들이 고용되었다. 이들은 요포(料布)를 지급받았다. 연장은 그 역할의 특성상 야장(冶匠), 주장(注匠), 유장(鍮匠)과 역할이 중복되었다.
[변천]
고려시대에 군기감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으며, 조선시대 때는 군기감의 장인을 증원한 1434년에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다[『세종실록』 16년 6월 11일]. 이때 연장은 6명에서 15명이 증원되어 21명이 정원이 되었다. 이후 1460년(세조 6)에는 군기시 소속 장인 가운데 연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야장, 주장 등이 연장의 일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된 1485년에는 군기시에 연장이 160명이나 있어 군기시 내에서 가장 많은 장인 수를 차지하였다. 이 밖에 상의원(尙衣院)에도 연장 10명이 소속되었다. 연장은 조선후기에도 국역(國役)에 동원되었다. 1640년(인조 18)에 중앙에서 화살을 대량으로 제작하였는데, 화살촉이 부족한 이유가 작업 인원이 전장(箭匠) 2명, 야장 1명의 비율로 구성되었기 때문으로 이에 야장과 연장을 추가로 배치하도록 하였다. 이들에게는 임금으로 요포가 지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