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오행성 중 하나인 화성(火星)은 그 별빛이 붉은 빛을 띠면서 밝게 빛난다 하여 일명 적성이라 일컬으며, 그 운행에 순행과 역행이 반복되는 등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고 하여 형혹성이라 이름 지었다.
[내용 및 특징]
화성은 겉보기 등급이 -2.91등에서 +1.8등성으로 매우 밝은 붉은색의 행성인데, 광색(光色)이 마치 불처럼 홍색(紅色)으로 형형(熒熒)하게 빛나고, 또 화성의 천구 상 운동이 서에서 동으로 때로 동에서 서로 움직여 사람을 미혹(迷惑)하는 의미도 있다 하여 형혹(熒惑)이라 불렀다.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에서 형혹성이 난역(亂逆)과 도적(盜賊), 역질(疫疾)과 상사(喪死), 기근(饑饉)과 병란(兵亂)을 주관한다고 본 것은 그런 이미지 때문이다. 화성이 머무는 수차(宿次)의 나라가 재앙을 받는데, 화성이 머무른 지 오래된 경우는 재앙이 크고, 물러가면서 이르는 경우는 작으며, 갔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경우에는 재앙이 더욱 심해진다고 보았다. 이런 점사는 화성이 현대 천문학적으로 외행성의 일종으로 지구에서 볼 때 그 궤도가 순행과 역행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하겠다.
고대에는 이런 불규칙한 운행을 하는 화성에 대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는데, 그 운행이 일정치 않아 동방에 거할 때는 매달려 쉬는 현식(懸息)이 되고, 서방에 거할 때는 하늘의 감옥인 천리(天理)가 되고, 남방은 형혹이 된다. 혹은 진퇴가 일관성이 없어, 조급(躁急)하고 촉질(促疾)하므로 형혹이라 이른다고 한다. 여름에는 더욱 왕성하여 그 색깔이 심대성(心大星)보다도 더욱 크고 붉게 빛난다고도 보았다.
이같이 화성이 가지는 의미는 남방과 적색, 불규칙한 것에서 비롯한다. 『천문류초(天文類抄)』에서 형혹성은 방위로는 남방이고, 계절로는 여름이며, 오행으로는 화(火)이고, 오상(五常)으로는 예(禮)이며, 오사(五事)로는 시(視)에 해당한다 하였고, 28수로는 남방칠수인 정·귀·유·성·장·익·진의 일곱 별자리를 주관한다. 이에 인간 사회가 예절에 어긋나거나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여름에 합당한 정령을 거스르고 화기를 상하게 하면 그 잘못에 대한 벌이 형혹성에 나타난다고 보았다. 또 형혹성은 법을 집행하는 하늘의 관리인 집법(執法)을 주관하는데, 항상 10월에 태미원에 들어가서 지침을 받고 나와 이십팔수를 운행하면서 무도하게 행동하는 자나 지역 나라에 징벌을 내린다고 인식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화성을 언급한 기록이 300건을 넘는다. 화성이 궤도를 이탈한 것에 대한 논의가 실려 있는데, 왕이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나도 밤마다 천문을 관찰하는데, 형혹성이 궤도를 이탈하였거늘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어찌하여 서계(書啓)하지 않는가? 해로움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서 아뢰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보지 못해서 아뢰지 않는 것인가? 물어보도록 하라.”고 하였고, 관상감 정(正) 이종민(李宗敏)이 “윤9월에 이미 궤도를 이탈하였음을 아뢰었으므로, 지금 다시 아뢰지 않았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성종실록』 21년 12월 3일]. 이 말은 화성이 황도(黃道) 궤도를 벗어났다는 것인데, 관상감 관원 김응기(金應箕), 조지서(趙之瑞) 등이 “해와 달과 오위(五緯)는 항상 황도로 말미암습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형혹성이 태미의 서원(西垣) 남쪽 제2, 3성 사이에 있었는데, 지금은 제3성으로 물러나 있으며, 거리가 3, 4척 남짓 됩니다만, 황도에 들어가는 것은 미리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변하고 있다[『성종실록』 21년 12월 22일]. 이 궤도 이탈을 하늘의 천견(天譴)으로 보고 송나라 경공(景公)의 천변 고사에 의거하여 공구(恐懼) 수성(修省)하는 문제를 잇달아 논의하고 있다[『성종실록』 22년 1월 5일]. 경공의 고사는 춘추시대 송나라 경공이 형혹성이 심성(心星)을 범하는 재변을 보고, 이 재변으로 백성이 굶어 죽으면 누구를 위해 임금 노릇을 하겠는가 하면서 자성(自省)하고 근신(謹愼)하였는데, 그러자마자 형혹성이 3사(舍)나 옮겨 물러났다고 하여 하늘과 사람 사이에 감응이 심히 빠른 것임을 언급할 때 흔히 거론하는 고사이다. 일본의 서계가 패역한 것을 두고 조헌(趙憲)이 이를 비판하는 소장에서, 미성(尾星)과 기성(箕星)의 분야에 형혹성이 나타나 있으니, 이는 실로 왜구가 우리나라에 먼저 침구(侵寇)할 조짐이며, 동남 지방에 지진이 없는 달이 없는 것은 영남, 호남이 전화(戰禍)를 당할 징후라고 말하였다. 기미성(箕尾星)은 28수의 동방칠수에 속하는 별이며, 지상을 관장하는 천문분야론에 따르면 조선의 지역을 주관하는 별이라 믿어졌다. 이렇게 조헌은 기미성에 붉은빛의 병란의 신인 형혹성이 머물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왜구의 침입이 있을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선조수정실록』 24년 3월 1일]. 제왕의 위치를 나타내는 자미원(紫微垣)에 형혹성이 침범하고, 나라의 근본이 되는 삼남 지방이 온통 황폐해졌으니 하늘과 조정의 경고가 준엄하다고 말하고 있다[『인조실록』 12년 5월 27일]. 형혹성이 태미원으로 들어가니 이는 병상(兵象)인 것이다. 얼마 안 되어 무신의 변란(變亂)이 있었다고 한 것은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일컫는 것이다[『영조실록』 3년 11월 11일]. 이렇게 조선시대에 화성은 병란과 변란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고, 다양한 정치적 투쟁의 천변적 논거로 활용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