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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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세(漁稅)

서지사항
항목명어세(漁稅)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잡세(雜稅)
관련어균역법(均役法), 균역청(均役廳), 궁방절수(宮房折受), 어조(漁條), 방렴(防簾)
분야경제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어업에 부과된 세.

[개설]
고려시대 귀족들이 사점(私占)해 온 어장·어전 등은 조선초 국가가 모두 환수하여 빈민에게 대여하는 조치가 취하여졌다. 조선 정부는 이들로부터 수확량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세조대 이래 어전이 궁방과 양반관료에게 절수의 형태로 지급되어, 권세가들에 의해 다시 사적으로 점유되기 시작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에 따라 어업에 대한 궁방 아문의 세금 징수가 아주 무거웠을 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에서 중복해서 거두는 폐단이 발생하였다. 이후 균역법 시행에 따라 어세 수취를 균역청에서 주관하게 하였고, 이 과정에서 어세의 체계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다.

[내용]
균역법의 어세 부과 기준은 크게 3가지였다. 지역 사정과 어업 방식, 어획고의 차이에 따라 부과 기준을 달리한 것이었다. 이렇게 책정된 어세의 1/10은 해당 지방관에게 납부하였다.

균역법의 어세 조항에는 중복 수세, 과중한 세액 징수, 그리고 생산하지 않는 곳에 세를 부과하는 폐단에 대하여 다양한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생산 변동이 심한 어장이나 어조에서는 실제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에만 세금을 거두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그 변동 상황을 매년 조사하여 다음 세액을 책정할 때 반영하도록 하였다. 어조와 방렴은 고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조였던 것이 방렴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그 변화를 조사·기록하여 수세에 참고하게 하였다. 아울러 새로운 어전 등이 설치되거나 처음 세액의 등급을 부과할 때 그 크기 등 수세 등급의 변화 여부를 정확히 조사하여 실정에 맞게 세액을 부과하도록 하였다. 이를 위반한 선주나 지방관 등은 엄히 처벌하도록 하였다.

[변천]
균역법의 시행으로 어세의 과세 기준이 세밀해지고, 정액 수세제와 생산 조건에 따른 차등 수세제가 시행되는 한편 조세금납화가 촉진되었다. 또 수세 기관이 일원화됨으로써 첩징과 남징의 폐단도 크게 완화되었다. 사사로운 징세가 부분적으로 재개되기는 하였지만, 균역법 시행으로 어민들은 궁방이나 토호의 자의적인 수탈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 김옥근, 『조선왕조재정사연구Ⅱ』, 일조각, 1987.
■ 유승원, 『조선초기신분제연구』, 을유문화사, 1987
■ 김의환, 「17·18세기 염세정책의 변동」, 『조선시대사학보』 6, 조선시대사학회, 1998.
■ 이욱, 「조선후기 어염정책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집필자] 이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