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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선조 후반에서 광해군 초반, 북인의 한 당파인 대북 중에서 병조 판서 홍여순을 지지하여 분당한 당파.
[개설]
북인(北人) 중 대북(大北)이 다시 분당하여 골북(骨北)과 육북(肉北)이 되었다. 육북의 중심에는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골북의 중심에는 병조 판서 홍여순(洪汝諄)이 있었다. 1608년(광해 즉위)의 실록 기사에는 "이산해·홍여순·유영경·이이첨은 본래 같은 당이었다. 그런데 뒤에 갈라져 서로 공격하면서 어느 쪽은 대북이라 하고, 어느 쪽은 소북이라 하며, 어느 쪽은 골북이라 하였다. 이들은 모두 권력을 잡기 위해 다투며 서로 왕을 해칠 음모를 꾀했다느니 왕을 보호하려 했다느니 하면서 반목하였다."[『광해군일기(중초본)』 즉위년 4월 14일]고 하여 북인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골북이 생겼음을 기록하고 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이산해와 홍여순은 소북인 김신국과 남이공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같은 입장을 취하여 대북의 영수가 되었으나, 소북이 세력을 잃은 후에는 서로 대립하여 각기 육북과 골북의 영수가 되었다. 『연려실기술』 「선조조고사본말」에는, "이산해가 다시 들어와 영의정이 되고 홍여순이 병조 판서가 되어 권력을 다투어 서로 공격하였는데, 홍여순의 논의를 따르는 자를 골북이라 하고 이이첨의 논의를 따르는 자를 육북이라 하였다."고 하여 골북의 영수가 홍여순임을 기록하고 있다. 『당의통략』의 「선조조」에도, "이산해와 홍여순이 서로 권력을 다투어 이산해의 당을 육북이라 하였고, 홍여순의 당을 골북이라 하였다."고 하여 육북의 영수는 이산해, 골북의 영수는 홍여순임을 기록하고 있다. 이산해와 홍여순은 원래 대북이었으므로, 육북과 골북은 대북에서 분파한 당파임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