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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윤산역(輪山驛)은 조선 왕조의 건국 직후 한양 중심의 역도(驛道)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윤산역은 황산도(黃山道)의 속역으로, 경상도 양산군에 위치하였다. 그 뒤 세조 연간인 1457년에는 같은 역도에 포함된 황산역에 통합되었으나, 1462년에 분리되어 황산도의 속역으로 환원되었다. 이후 별다른 변화 없이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윤산역은 고려시대의 역도와 속역이 기록되어 있는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는 그 명칭이 보이지 않으므로,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으로 윤산역의 명칭이 거론되는 것은 세종대의 일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잉보역(仍甫驛)·노곡역(奴谷驛)·구어역(仇於驛) 등과 더불어 황산도의 속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변천]
윤산역은 1457년(세조 3)에 경상도관찰사의 계청에 따라 황산역에 통합되었으나[『세조실록』 3년 4월 28일], 1462년(세조 8)에 다시 분리, 황산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어 황산도 역승(驛丞)의 통제를 받았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그 뒤 조선시대 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는 경상좌도의 역도인 황산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황산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에 따르면, 윤산역은 양산군 서쪽 5리 지점에 위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