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영양역(寧陽驛)

서지사항
항목명영양역(寧陽驛)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안기도(安奇道)
관련어역도(驛道), 속역(屬驛), 역승(驛丞), 찰방(察訪) 역리(驛吏), 역노(驛奴), 역비(驛婢), 송라도(松羅道), 영해부(寧海府)
분야경제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안기도에 속한 역.

[개설]
영양역(寧陽驛)은 조선 세종에서 세조 연간에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립 당시에는 안기도(安奇道)에 소속되었으나, 세조대에 송라도로 이속되었다가 성종대에 다시 안기도의 속역으로 환원되었다. 이후 별다른 변화 없이 존속하다가, 갑오개혁을 계기로 역참제가 철폐되면서 함께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역참은 중앙과 지방 사이에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진상품 등 공공 물자를 운송하며, 왕래하는 사신을 접대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한 육상 교통 기관이었다. 영양역 역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에 설치하였다.

[조직 및 역할]
조선시대에는 역역(驛役)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역참에 역리(驛吏)와 역노비(驛奴婢)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역민(驛民)을 편성하였으며, 역의 재정에 충당하도록 역위전(驛位田) 또는 마전(馬田)을 지급하였다. 영양역의 경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영해현(寧海縣) 조에 따르면, 역리(驛吏) 5명, 역노(驛奴) 3명, 역비(驛婢) 2명과, 중마 2필, 복마 5필 등 7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세종 연간의 역도 체제가 기록되어 있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영해도호부에 위치한 역으로 병곡역(柄谷驛)과 석보(石保)에 있는 신역(新驛)이 기록되어 있을 뿐 영양역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영양역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세조대의 일이다. 1460년(세조 6)에 안기도의 속역인 영양역과 장수도(長守道) 및 황산도(黃山道)의 일부 속역을 통합하여, 당시 신설된 송라도의 속역으로 편제했다는 기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세조실록』 6년 2월 5일].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영양역은 세종대 이후에 신설되어 안기도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성종대인 1471년(성종 2)에는 송라도에 속한 각산역(角山驛)·청운역(靑雲驛)·문거역(文居驛)·화목역(和目驛) 등과 함께 안기도의 속역으로 환원되었다[『성종실록』 2년 윤9월 1일].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안기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한편 『여지도서』에 따르면, 영양역은 영해부 서쪽 80리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동쪽의 병곡역과는 80리, 서쪽의 진보각산역(眞寶角山驛)과는 15리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집필자] 홍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