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분행역(分行驛)

서지사항
항목명분행역(分行驛)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양재도(良才道), 영화도(迎華道)
관련어속역(屬驛), 역마(驛馬), 역승(驛丞), 역노비(驛奴婢), 죽산군(竹山郡), 찰방(察訪), 대평원(大平院)
분야경제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의 도로망인 양재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려시대에는 성종에서 문종 연간에 역로(驛路)를 22역도(驛道)-525속역(屬驛) 체제로 정비하였는데, 이때 분행역(分行驛)은 광주도(廣州道)에 포함된 죽주(竹州)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 때 역로를 44역도-537속역 체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경기좌도충청도정역찰방의 관할이 되었으며, 세조대에 41역도-543속역 체제로 다시 개편하면서 양재도(良才道)를 구성하는 역의 하나가 되었다. 18세기 후반인 정조대에는 양재도가 영화도(迎華道)로 바뀌면서 영화도에 속하였고, 이후 갑오개혁 때까지 유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분행역은 고려시대부터 경기도 죽산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광주도에 속한 15개소의 역 가운데 하나였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995년(고려 성종 14)에서 1067년(고려 문종 21) 사이에 역제(驛制)를 초기의 6과-147역에서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광주도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이 갖추어지면서, 양재역(良才驛) 등과 함께 경기좌도충청도정역찰방이 관할하는 7개 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죽산군 편에 따르면, 분행역에는 역마 7필과 역노비 14명이 배속되어 있었고, 대평원(大平院)이라는 원도 딸려 있었다. 그에 비해 순조 때 간행된 『화성지(華城志)』에는 역마의 수가 6필로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분행역은 양재역에서 좌찬역(佐贊驛)을 거쳐 경상도 동래(東萊)로 향하는 영남대로(嶺南大路)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위로는 용인·백암·양지·이천·여주로, 아래로는 장호원과 광혜원으로 가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였다.

[변천]
1460년(세조 6)에는 경기도와 하삼도(下三道)의 역을 정비하였다. 여러 도와 역에 두었던 역승(驛丞)을 없애고 그 대신 찰방(察訪)으로 하여금 여러 도를 아울러 관리하게 하면서 역로가 멀어 순시하는 데 각종 폐단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분행역이 소속된 양재도를 비롯해 중림도(重林道)와 동화도(同化道)에 속한 23개 역이 경기좌도로 통합되었다[『세조실록』 6년 2월 5일]. 그 뒤 1462년(세조 8)에 역로가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되면서 분행역은 양재도찰방에 속하게 되었다. 1796년(정조 20)에는 양재역이 수원으로 이설되어 영화역으로 개칭됨에 따라 양재도 또한 영화도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때 분행역도 영화도 소속으로 재편되었다. 이후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지방으로 뻗은 외방 도로를 멀고 가까움에 따라 대로·중로·소로로 구분하였다. 한양에서 동래로 향하는 영남로의 경우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죽산 분행역까지를 대로, 분행역에서 상주 낙양역(洛陽驛)까지를 중로, 그 이하를 소로로 분류했다. 그런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경기도 광주의 낙생역(樂生驛)까지를 대로, 낙생역에서 상주 낙양역까지를 중로로 구분하고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분행역의 위치는 『여지도서』에는 죽산현 동쪽 5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죽산현 북쪽 10리 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위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분행마을이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시대의 문인인 김황원(金黃元)·이규보(李奎報)·김극기(金克己)·정지상(鄭知常)·정이오(鄭以吾) 등이 분행역과 관련해 남긴 시가 전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죽산군(竹山郡)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죽산현(竹山縣)
■ 『대동지지(大東地志)』 죽산현(竹山縣)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집필자]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