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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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통역(德通驛)

서지사항
항목명덕통역(德通驛)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유곡도(幽谷道)
관련어역리(驛吏), 역노(驛奴), 상주도(尙州道), 속역(屬驛), 역도(驛道), 역승(驛丞), 찰방(察訪), 함창현(咸昌縣)
분야경제
유형집단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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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유곡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덕통역(德通驛)은 고려시대에는 상주도(尙州道)의 속역으로, 함창에 위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을 갖추는 과정에서 유곡도(幽谷道)에 소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상주도에 소속된 25개 속역 가운데 하나였다. 상주도는 상주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구미, 동북쪽으로 함창·안동·예천·문경 등을 연결하였는데, 덕통역은 그 중 함창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성종대부터 인종대까지 전국의 역제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되면서 상주도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직 및 역할]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함창 조에 따르면, 당시 덕통역에는 역리(驛吏) 45명, 역노(驛奴) 11명과 대마(大馬) 2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4필 등 총 8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 건국 후 전국적으로 역도와 역로 조직을 갖추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종대에 덕통역은 경상도 지역의 문경-함창-상주-선산 방면의 역로를 관할하는 유곡도에 소속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1457년(세조 3)의 역승 폐지에 따른 조치로 찰방의 순시 범위가 넓어지게 되어 1462년(세조 8)에 대대적인 역로 개편 작업이 진행되었을 때에는 그대로 유곡도에 속하였으며[『세조실록』 8년 8월 5일],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도 별다른 변화 없이 유곡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덕통역은 함창 관아 동쪽 7리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북쪽의 문경 유곡역과는 20리, 남쪽의 상주 낙원역과는 30리, 동쪽의 예천 수산역과는 30리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집필자] 홍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