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고평역(高平驛)

서지사항
항목명고평역(高平驛)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김천도(金泉道)
관련어역도(驛道), 속역(屬驛), 김천도승(金泉道丞), 팔거신역(八莒新驛), 역리(驛吏), 칠곡현(漆谷縣), 찰방(察訪), 역승(驛丞)
분야경제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김천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읍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평역(高平驛)은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 초기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세조 연간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김천도(金泉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로 편제되었다. 경상도 칠곡현에 위치해 있었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세종대에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이 마련될 당시에는 고평역의 역명이 확인되지 않으며, 세조 연간부터 고평역의 명칭이 확인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김천도승(金泉道丞)이 관할하는 16개의 역명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팔거신역(八莒新驛)이 고평역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칠곡현 조에 따르면, 고평역에는 역리(驛吏) 63명과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6필 등 총 8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1462년(세조 8)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각 도의 역참을 혁파하고 역로를 정비해 찰방(察訪)역승(驛丞)을 두었다. 그 과정에서 고평역은 김천역(金泉驛)·문산역(文山驛)·추풍역(秋豐驛)·작내역(作內驛)·장곡역(長谷驛)·무천역(茂村驛)·생초역(省草驛)·성기역(星奇驛)·답계역(踏溪驛)·안언역(安彦驛)·무계역(茂溪驛)·설화역(舌化驛)·양원역(楊原驛)·동안역(東安驛)·양천역(楊川驛)·부쌍역(扶雙驛)·안림역(安林驛)·팔진역(八鎭驛)·권빈역(勸賓驛)·금양역(金陽驛) 등 21개 역과 함께 김천도에 소속되어 김천도찰방의 관할이 되었다. 그 뒤 조선시대 후기까지 김천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철폐되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고평역은 칠곡현 관아 남쪽 30리 지점에 있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만기요람(萬機要覽)』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조선전기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오일순, 「고려시대 역제의 변동과 잡색역」,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요근, 「고려전기 역제의 정비와 22역도」, 『한국사론』45, 2001.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집필자] 성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