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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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도(慶安道)

서지사항
항목명경안도(慶安道)
용어구분전문주석
하위어덕풍역(德豊驛), 아천역(阿川驛), 오천역(吾川驛), 유춘역(留春驛), 양화역(楊花驛), 신진역(新津驛), 안평역(安平驛)
관련어능행로(陵行路), 역도(驛道), 역승(驛丞), 찰방(察訪), 광주부(廣州府)
분야경제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廣州)의 경안역(慶安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

[개설]
경안도(慶安道)는 조선 세종 연간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경상좌도의 진상품과 왜인들의 수공(輸貢) 물품을 한양에 전달하는 수송로의 역들을 관할하였다. 또한 왕이 도성을 출발하여 여주 영녕릉(英寧陵)으로 가는 능행로에 위치하여, 수행 인원의 접대 및 잡물 운반에 쓰이는 역마의 입대(立待) 등을 담당하였다.

[내용 및 특징]
경안도는 양재도(良才道)·평구도(平丘道)와 함께 경기도 행정 구역에 속한 역도(驛道)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덕풍역·아천역·오천역·유춘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 등 7개 속역이 경안도에 포함돼 있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경상좌도의 진상품과 왜인들이 수공하는 물품은 모두 충청도의 장림역·황간역·수산역·연원역·가흥역 등과, 경기도의 안평역(安平驛)·신진역(新津驛)·양화역(楊花驛)·아천역(阿川驛)·유춘역(留春驛)·오천역(吾川驛)·경안역·봉안역·오빈역·덕풍역(德豊驛)·평구역 등을 경유하였다[『세조실록』 3년 9월 12일]. 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안동(安東)의 도회진상(都會進上)인 영덕(盈德)의 별진상(別進上)도 이 경로를 거쳐 한양으로 수송되었으며, 일본의 사신도 이 길을 통해 사행을 하였다[『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 이로 볼 때 진상품의 수송 및 일본과의 외교에서 경안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경안도는 도성에서 여주의 영릉으로 가는 능행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왕을 수행하는 다수의 인원을 접대하고 각종 물자를 운반하는 데 쓰이는 역마를 제공해야 하는 등의 부담을 지고 있었다.

『연산군일기』에 "유독 경안일로(경안도)만이 심하게 조잔·피폐하다."[『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경안도의 운영은 그리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변천]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413년(태종 13)에 부분적인 개편에 나서서 경기도의 마산도(馬山道)를 청파도(靑坡道), 금곡도(金谷道)를 중림도(重林道), 풍해도구참(豊海道九站)을 동선보산도(洞仙寶山道)로 개편하고 청교도(靑郊道)를 증설하였으며, 이듬해에는 평구도를 복치하였다. 그 뒤 1423년(세종 5)에는 경상도에 황산도(黃山道)와 성현도(省峴道)를 설치하였고, 6진 개척을 계기로 태조 이후 신설한 역들을 관리하기 위해 역도-속역 체계를 확립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경안도는 덕풍역·아천역·오천역·유춘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 등 7개 속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485년(성종 15)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이 편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성종실록』에 따르면 1475년(성종 6)에 평구도에 속한 덕풍역·경안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 등 5개 역을 예전대로 경안도에 소속시키고, 양재도에 소속된 아천역·오천역·유춘역 등 3개 역을 경안도에 이속시켰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의 역도는 『경국대전』이 편찬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개편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경안도의 속역이 덕풍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아천역·오천역·유춘역 등 7개 역으로 되어 있어, 『경국대전』에 기록된 경안도의 편제가 이후에도 변화 없이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세종대에는 경안도에 역승(驛丞)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고, 1457년(세조 3)에는 찰방(察訪)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865년(고종 2)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따르면 경안도를 비롯해 경기도의 양재도·영서도, 강원도의 은계도, 충청도의 성환도, 함경도의 고산도, 평안도의 대동도·어천도 등의 경우 성균관과 승문원의 관원 등 중앙 관원으로 하여금 찰방을 겸직하게 하고, 민정의 비위를 탐사하여 왕에게 직접 상주하게 하는 겸찰방 제도를 실시하였다. 경안도는 1896년(고종 33)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 [집필자] 조성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