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28수가 방위에 따라 네 가지 신령한 동물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여겼다. 여성(女星)은 그중에서 북방 현무(玄武)에 속하는 일곱 별자리 중에서 셋째 별자리이다. 여성은 서양 별자리로는 물병자리의 일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별자리의 수거성(宿距星)은 ‘ε Aqr(엡실론 물병자리)’라는 별이다.
[내용 및 특징]
밤하늘에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붙박이별[恒星]들과 그 붙박이별을 배경으로 늘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와 달, 그리고 오행성 등의 태양계 천체들이 있다. 이들 태양계 천체들은 밤하늘에서 주로 황도(黃道)를 따라 운행한다. 그래서 태양계 천체들의 위치를 기술할 때 황도 주위에 별자리들을 정해두고 그 별자리들에 대한 상대 위치로 기술하면 편리하다. 이와 같은 동기로 서양 천문학에서는 황도 12궁을 지정하였고, 중국에서는 28수를 지정하였다.
중국 천문학에서는 왜 28개의 별자리를 정하였는지에 대해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그중 유력한 설은, 달의 운행 주기인 항성월을 기준으로 했다는 설이다. 1항성월은 약 27.32일이기 때문에, 황도 주변에 27개나 28개의 별자리를 정해두면 매일 변하는 달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천문학에서는 28수를 이루는 28개의 별자리들은 각 계절별로 7개씩 나누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령한 동물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주로 봄과 초여름 밤에 보이는 각(角)·항(亢)·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는 청룡(靑龍)의 모습을 이루고 있고, 여름과 가을철에 보이는 두(斗)·우(牛)·여(女)·허(虛)·위(危)·실(室)·벽(壁)은 현무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가을과 겨울에 보이는 규(奎)·누(婁)·위(胃)·묘(昴)·필(畢)·자(觜)·삼(參)은 백호(白虎)의 모습을 이루고 있고, 겨울에 보이는 정(井)·귀(鬼)·유(柳)·성(星)·장(張)·익(翼)·진(軫)은 주작(朱雀)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성도(星圖)에서 보면, 여성은 물병자리의 ε(엡실론)·μ(뮤)·5·3 Aqr(3 물병자리) 등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거성은 ‘ε Aqr’이다.
조선시대의 천문학자들이 별점을 칠 때 주로 참고했던 『천문류초(天文類抄)』의 원전인 『통지(通志)』「천문략(天文略)」에는 “여성은 하늘의 작은 관청[少府]이다. 그 아래 9척(尺)에는 황도가 지나가고 있다. 여성을 수녀(須女)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낮은 신분의 부인들을 뜻한다. 여성은 부녀(婦女)의 일을 주관하니, 비단을 재단하거나 시집가거나 장가드는 일을 주관한다. 별이 밝으면 천하가 풍년이 들고 여자들의 일[女功]이 번창할 것이며, 그 별들이 작고 어두우면 곧 나라의 곳간이 비게 될 것이다. 그 별들이 이동하면 부녀들이 재앙을 입을 것이고, 아이를 낳다가 죽는 산모들이 많아질 것이며, 후비(后妃)를 폐하게 된다. 여성에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면 나라에 우환이 생길 것이다. 목성이 여성을 침범하면 왕후를 세우게 되고, 화성이 침범하면 여자가 죽을 것이며, 금성이 침범하면 재앙이 있을 것이다. 토성이나 패성(孛星)이 침범하면 양잠이 손실을 입게 되고, 달무리[月暈]가 생기면 부인들이 재앙을 입을 것이다. 또한 말하기를, 수성이 여성을 지키면[守] 만물이 익지 않을 것이고, 화성이 이 별자리를 지키면 옷감이 귀해지고 사람이 많이 죽게 되며, 토성이 이 별자리를 지키면 여자들이 죽을 것이고, 금성이 이 별자리를 지키면 병란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 침범한다[犯]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며, 지킨다[守]는 것은 들어가서 오랫동안 있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여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며 대개 별똥별 관련 기록이다. 예를 들면, 별똥별이 여성에서 나와서 두(斗)로 들어갔는데, 길이는 5척(尺)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성종실록』 19년 6월 17일]. 여기서 두는 북두성이 아니라 남두성(南斗星)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여성을 수녀성(須女星)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