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공릉(恭陵), 순릉(順陵)과 더불어 ‘파주삼릉(坡州三陵)’으로 불리는 영릉은 그중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1729년(영조 5)에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묘로 조성되었고, 1751년(영조 27)에 세자빈이 승하하자 그 왼쪽에 안장하였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통을 잇게 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왕위에 오른 정조는 효장세자를 진종(眞宗)으로, 효순현빈(孝純賢嬪)을 효순왕후(孝純王后)로 추숭하고 능호를 영릉이라 하였다. 진종과 효순왕후는 1908년(융희 2)에 다시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로 추존되었다.
[조성 경위]
진종은 1719년(숙종 45) 2월 15일, 한성부 북부 창의궁 사저에서 영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725년(영조 1) 7세의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727년(영조 3)에는 좌의정 조문명(趙文命)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0월부터 병세가 깊어져 결국 11월 16일 창경궁 진수당에서 승하하였다. 영조는 ‘효장’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1729년(영조 5) 1월 26일 파주에 장사 지냈다[『영조실록』 5년 1월 26일].
효순왕후는 1715년(숙종 41) 12월 14일, 한성부 동부 숭교방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와 어린 세자의 죽음을 보았고, 그 뒤 20여 년을 홀로 지냈다. 1751년(영조 27) 11월 14일, 효장세자의 기일을 앞두고 창덕궁 건극당에서 3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이듬해 ‘효순’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1월 22일 효장세자의 묘 왼쪽에 안장하였다.
[조성 상황]
영릉은 순릉의 왼쪽 아래 능선에 나란히 조성되었다. 진종의 능은 을좌신향(乙坐辛向)으로 서북쪽을 향해 있는 데 비해, 효순왕후 능의 외봉은 을좌유향(乙坐酉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정자각이 먼저 조성된 진종의 능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봉분을 쓸 때 방향을 조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1728년(영조 4) 11월에 효장세자가 승하하자 12월 9일에 조성을 시작해서 이듬해 1월 26일에 장례를 치렀다. 정자각을 세우고, 능에는 양석과 호석 각 2개, 망주석 1쌍, 장명등 1좌, 문인석 1쌍과 마석 2개를 두었으나 병풍석과 난간석은 설치하지 않았다.
1752년(영조 28) 1월 22일에는 효순현빈을 효장세자의 묘소 옆에 안장하고, 혼유석만 각각 1좌씩 배설하였다.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한 뒤에도 석물을 추가로 배설하지는 않았다.
영릉의 정자각은 1729년에 효장세자의 장례를 위해 조성했는데, 주변에 공릉과 순릉이 있어 재실은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주변 비각에는 처음 영릉을 조성할 당시에 세운 비와, 1785년(정조 9)에 세운 어필 비, 그리고 1908년(융희 2)에 진종소황제, 효순소황후로 추존하면서 이를 기록하여 세운 비가 있다[『순종실록』 1년 5월 15일].
[변천]
비각은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효장세자의 묘소를 조성할 당시에 1칸 비각을 세웠고, 그 뒤 1785년에 정조가 또 1칸 규모의 비각을 지어 나란히 세웠는데, 1908년에 순종이 비를 추가하면서 정조 때 세운 비각을 2칸으로 확장하여 2개의 비를 봉안한 것으로 추측된다.
1792년(정조 16)에는 정자각·비각·향화청(香火廳) 등을 개수하고 새로 단장했는데[『정조실록』 16년 2월 25일], 정자각은 1808년(순조 13)에도 수리한 기록이 있다. 근년에는 1996년에 복건하였다. 비각은 2006년에 2동 모두 지붕 보수 공사를 하였다. 1910년(융희 4)에 이왕직(李王職)에서 작성한 배치도를 보면 수라간과 수복방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눈에 띄는데, 오늘날에는 전하지 않는다.
[관련 사항]
효장세자의 묘는 영릉으로 추존된 정조대부터 공릉, 순릉과 함께 ‘파주삼릉’이라 불렸다. 공릉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章順王后)의 능이고, 순릉은 성종의 원비인 공혜왕후(恭惠王后)의 능이다.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모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다. 순조는 같은 능역에 있는 세 능을 함께 전배하고 파주 행궁에 묵었다[『순조실록』 8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