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전통시대 토지에 대한 권리는 단일하지 않았다. 즉, 한 필지의 토지에 실제 토지를 소유하여 경작·매매·상속할 수 있는 소유권(所有權), 국가로부터 전조(田租)의 수취 권한을 위임받은 수조권(收租權), 실제 토지를 경작함에 따라 관행적으로 얻게 되는 권리가 함께 공존하였다. 각각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시대마다 각각 다른 용어로 지칭되었는데, 그중 전호(佃戶)는 토지 소유 유무와 관계없이 실제 경작을 담당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조선전기에는 수조권자인 전주(田主)에 대비되어 실제 토지를 소유하고 경작하는 전객(佃客)과 동의어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실제 토지를 소유하는 지주(地主)에 대비되어 지주의 토지를 차경(借耕)하여 병작반수(竝作半收)하는 경작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전기에는 국가가 관원 및 각 관서에 전조의 수취권을 나누어 주는 수조권 분급제가 시행되었다. 수조권 분급제 하에서 토지에 대한 권리는 토지에 대한 수조권과 실제 토지를 소유하는 권리로 크게 나뉘었다. 이때 수조권자를 전주, 실제 토지를 소유한자를 전객이라 칭하였다. 전객은 같은 의미로 전호로도 불렸다[『세종실록』 6년 1월 9일], 대부분의 전객은 자영농민으로서 자신 소유의 토지에서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수조권이 설정된 토지에서도 실제 토지 소유자인 전객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대여하여 병작반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는 실제 농사를 짓는 차경인이 전호가 되었다. 즉, 토지에 대해 수조권자인 전주, 조세를 수조권자에게 납부해야 하는 전객이면서 동시에 토지를 소유한 지주, 그리고 토지를 차경하는 전호가 모두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본래 소유지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개간지에 대해서도 실제 개간을 행하고 경작하는 농민을 전호로 칭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3년 6월 14일].
요컨대 전호는 해당 토지의 수조권·소유권의 소속 유무와 관계없이 해당 토지를 실제 경작하는 민호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변천]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국가에 의한 수조권 분급제는 거의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토지에 대한 제반(여러 가지) 권리는 소유와 경작으로 이원화되었다. 이에 따라 지주전호제(地主佃戶制)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조선후기에 전호는 지주로부터 땅을 대여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고정되었다.
지주와 전호는 보통 수확한 곡식을 50%씩 나누었는데, 이를 병작반수라고 하였다. 물론 지주와 전호의 생산물에 대한 분배 비율은 지역에 따라 달랐다. 또한 해당 토지에 대한 국가 세금 부담도 지역에 따라 지주가 부담하기도 하고 전호가 부담하기도 하였다.
일제시기에는 전호라는 용어보다 소작(小作)·소작인(小作人)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다른 사람의 토지를 차경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거의 같았으나, 실상은 조선시대 전호가 가진 권리가 소작인에게는 상당 부분 제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