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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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祈雨祭)

서지사항
항목명기우제(祈雨祭)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기고제(祈告祭)
하위어석척기우(蜥蜴祈雨), 침호두(沈虎頭), 토룡제(土龍祭), 화룡제(畵龍祭)
관련어기설제(祈雪祭), 보사제(報祀祭), 영제(禜祭)
분야왕실
유형의식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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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가뭄이 들었을 때 비 오기를 빌기 위하여 지낸 제사.

[개설]
기우제는 오례의(五禮儀) 체제에서 기고제(祈告祭)에 속하는 비정기(非定期) 제사였다. 시기적으로는 대개 4월에서 6월에 집중되었는데, 비가 올 때까지 3~4일 간격으로 계속 지냈다. 기우제는 그 필요성이 절박하였기 때문에, 도교·불교·무속 등의 제반 의례를 유교의 틀 안에 포섭하려고 노력한 조선시대 사전(祀典) 중에서 무속적인 내용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기우제는 고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393년(태조 2)에 처음으로 지냈다. 그 뒤 1474년(성종 5)에 예조(禮曹)에서 기우 의례 9조목을 정리하여 올렸다. 1704년(숙종 30)에는 기우제의 12단계 차례를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고종 때까지 기우제의 정식 절차로 유지되었다.

[절차 및 내용]
1474년 예조에서 올린 기우 의례 9조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종묘(宗廟)·사직(社稷)·북교(北郊)·한강(漢江)·삼각산(三角山)·목멱산(木覓山)·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우사단(雩祀壇)에 제사한다. ② 태일(太一)과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에 초제(醮祭)를 설행한다. ③ 한강 두 나루에서는 침호두(沈虎頭)를 시행하며, 도교의 무리로 하여금 「용왕경(龍王經)」을 읽게 하고, 박연(朴淵)에서 침호두를 시행한다. ④ 경성의 각호(各戶)에서는 문(門)에 제사하고 분향한다. ⑤ 모화관(慕華館) 연못가에서 석척(蜥蜴)을 써서 기우한다. ⑥ 동방에는 청룡, 남방에는 적룡, 중앙에는 황룡, 서방에는 백룡, 북방에는 흑룡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낸다. ⑦ 저자도(楮子島)에서 화룡제를 지낸다. ⑧ 북문을 열고 남문을 닫는다. ⑨ 북을 치지 않는다[『성종실록』 5년 윤6월 10일].

이 기록을 통해, 조선전기의 기우 의식에는 유교적인 기고제(祈告祭) 외에도 도교와 연관된 제사나 용신과 관련된 무속적인 제례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방식도 신에 대한 강요 의례의 형식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숙종대에 만들어진 기우 12제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삼각산, 목멱산, 한강에 3품관을 보낸다. ② 용산강(龍山江), 저자도에 재신(宰臣)을 보낸다. ③ 풍운뇌우단·산천단·우사단에 재신을 보낸다. ④ 북교에 재신을 보내고 사직에 중신(重臣)을 보낸다. ⑤ 종묘에 중신을 보낸다. ⑥ 삼각산·목멱산·한강에 근시(近侍)를 보내고 침호두를 시행한다. ⑦ 용산강·저자도에 중신을 보낸다. ⑧ 풍운뇌우단·산천단·우사단에 중신을 보낸다. ⑨ 북교에 중신을 보내고 모화관 연못가에 무관(武官)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석척동자(蜥蜴童子)로 보내 기우하고, 여염에서는 병류(屛柳)를 행한다. ⑩ 대신을 보내 사직에 제사하고 경회루 연못가에 무관 가선대부를 석척동자로 보내 기우한다. ⑪ 대신을 종묘에 보내고, 무관 가선대부를 춘당대 연못가에 석척동자로 보내 기우하고, 남문을 닫고 북문을 열며, 시장을 옮긴다. ⑫ 오방토룡제(五方土龍祭)를 지내고, 양진(楊津)·덕진(德津)·오관산(五冠山)·감악(紺岳)·송악(松岳)·관악(冠岳)·박연·화적연(禾積淵)·도미진(渡迷津)·진암(辰巖)에서 분시(焚柴)하던 것을 모두 본도(本道)에서 설행한다[『숙종실록』 30년 6월 26일].

조선시대에 국가적으로 시행한 기우제 가운데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등재되지 않은 것들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음사(淫祀)’에 가까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조선왕조실록』에는 주로 사전(祀典)에 포함된 국행 기우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무당을 동원한 무속 국행 기우제도 있었으며[『광해군일기』 10년 윤4월 21일], 조선초에는 불교 승려들을 동원하여 비 오기를 빌기도 하였다[『태종실록』 13년 7월 2일].

[참고문헌]
■ 이욱,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창작과비평사, 2009.
■ 최종성, 『『기우제등록』과 기후의례-기우제·기청제·기설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 오인택, 「숙종대 국행 기우제에 나타난 한재 대응방식의 정치성」, 『역사학연구』29, 2007.
■ 이욱, 「조선전기 유교국가의 성립과 국가제사의 변화」, 『한국사연구』118, 2002.

■ [집필자] 강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