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1456년(세조 2) 6월에 집현전 학사 출신들이 연루된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나자 세조는 집현전을 혁파하였다. 그리고 집현전의 장서각을 예문관으로 옮기고, 임시 관직인 겸예문(兼藝文)을 두어 이를 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집현전의 직무를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어 1463년(세조 9) 11월에 장서각을 홍문관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겸관으로 2명의 정자(正字)를 두어 문서의 출납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이들이 이후 성종 연간에 이르러 경연의 전경(典經)을 겸임하였다. 경연의 전경을 겸임한 정자는 재행(才行)이 있는 젊은 문관 중에서 선발하였다.
[담당 직무]
성종 때 경연의 관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관직으로, 경적의 보관과 출납의 일을 맡아보았으며, 경연에 참석하여 강론하기도 하였다. 정원은 2명으로, 홍문관의 정9품 정자에게 겸임하도록 하였다.
[변천]
전경은 조선시대에 광범하게 운영된 경연 겸관 가운데 홍문관의 정자가 겸임한 관직이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1463년에 장서각을 홍문관으로 개편하면서 예문관의 봉교 이하의 관원에게 박사와 저작, 정자를 겸임시켜 문서의 출납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1479년(성종 10) 이후 홍문관은 본격적으로 학술과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이때 관원으로는 영사·대제학·제학·부제학·직제학·전한·응교·부응교 각 1명, 교리·부교리·수찬·부수찬 각 2명, 박사·저작 각 1명, 정자 2명 등을 두었다. 직제학에서 부응교까지는 동벽(東壁), 교리에서 부수찬까지는 서벽(西壁), 박사·저작·정자는 남상(南牀)이라고 일컬었으며, 부제학에서 부수찬까지는 지제교를 겸하였다. 이때 정자로 하여금 전경을 겸임하여 경연관의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편찬관의 명단에서 전경의 첫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예문관 검열 겸 홍문관 정자였던 강거효(姜居孝)·정이교(鄭以僑)·박처륜(朴處綸)·김직손(金直孫) 등이 경연의 전경을 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