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공물은 중앙의 호조 및 각사, 외방의 각도와 각관에 비치된 공안(貢案)에 의거하여 대개 각사 → (각도 감사) → 각관 수령 → 각면(各面) → 각호(各戶)의 체계로 부과·징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공물 중에는 해당 군현의 관부에서 공물을 준비하는 관비공물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각 군현의 민가에서 수취하여 상납하는 민비공물이었다.
[내용]
민비공물은 수령이 현물로 징수하거나 민정(民丁)을 사역하여 조달하였다. 민호에 공물을 분정할 때에는 각 집마다 일률적으로 부과한 것이 아니라 등급을 나누어 적용하였다. 민가에서 경작하는 토지[所耕田]의 많고 적음에 따라 5등호로 나누어 공물을 수취하는 원칙이 시행된 것은 1435년(세종 17)이었다[『세종실록』 17년 3월 6일]. 이후 공물도 이에 근거하여 분정한다는 원칙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가호의 크고 작은 정도에 따른 공물 부담액이라든가 부과율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군현의 관리들은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공물을 함부로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또한 공물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기 때문에 설사 가호의 규모에 따라 공물을 분정한다 해도 균일한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이것이 5등호제의 제도적인 미비점이자 결함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8결작공제(結作貢制)를 시행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田川孝三, 『李朝貢納制の硏究』, 東洋文庫, 1964.
■ 박도식, 「조선전기 8결작공제에 관한 연구」, 『한국사연구』 89, 1995.
■ 이성임, 「16세기 지방 군현의 공물분정과 수취: 경상도 성주(星州)를 대상으로」, 『역사와 현실』 통권 72호, 2009.
■ 이정철, 「조선시대 공물분정 방식의 변화와 대동의 어의」, 『한국사학보』 제34호, 2009.
■ 박도식, 「조선전기 공납제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