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공전(公田)

서지사항
항목명공전(公田)
용어구분전문주석
하위어국용전(國用田), 군자전(軍資田), 공해전(公廨田), 공수전(公須田)
관련어국전(國田), 사전(私田), 민전(民田)
분야경제
유형법제 정책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국가나 공공 기관이 소유권을 갖거나, 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전지.

[개설]
고려말 전제개혁 이후 조선초기의 각종 용례를 살펴보면, 수조권(收租權) 또는 수세권(收稅權)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국용전(國用田)·군자전(軍資田)·공해전(公廨田)·공수전(公須田) 등의 국가·공공 기관 수세지(收稅地)는 공전(公田)에 속하며, 과전(科田)·공신전(功臣田) 등과 같은 개인의 수조지(收租地)는 사전(私田)에 속하였다. 반면에 소유권을 기준으로 하면 둔전 등과 같은 국·공유지가 공전이고, 개인의 사유지 즉, 민전이 사전이었다.

[내용]
고려와 조선에서는 토지를 크게 공전과 사전으로 구분하였다[『태종실록』 3년 6월 5일]. 그 가운데 고려시대의 공전은 흔히 세 가지 유형, 즉 1과공전(一科公田)은 내장전(內莊田)과 같은 왕실 소속 토지, 2과공전은 둔전(屯田) 등과 같은 국가·공공 기관의 소유지, 3과공전은 국가 수조지로서의 민전(民田)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지만 고려말 전제개혁 이후 조선 초의 각종 용례를 살펴보면, 수조권 또는 수세권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국용전·군자전·공해전·공수전 등의 국가·공공기관 수세지가 공전이었으며, 과전·공신전 등과 같은 개인의 수조지가 사전이었다. 반면에 소유권을 기준으로 하면 둔전 등과 같은 국·공유지가 공전이고, 개인의 사유지 즉, 민전이 사전이었다.

[변천]
고려말에서 조선초기를 거치면서 과전(科田)과 같은 개인 수조지로서의 사전은 점차 축소되었던 반면에 국가 수세지로서의 공전은 더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는 전지와 농민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배력이 확대·강화되고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이성무, 『조선 초기 양반 연구』, 일조각, 1980.
■ 박례재, 「고려 현종조의 의창 조규에 엿보이는 공전의 삼과(三科) 구분에 대하여」, 『(공군사관학교)논문집』 13, 1981.
■ 旗田巍, 「李朝初期の公田」, 『朝鮮史硏究會論文集』 3, 1967.
■ 有井智德, 「李朝初期における公的土地所有としての公田」, 『朝鮮學報』 74, 1975.

■ [집필자] 이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