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조선시대 도성(都城)의 방범과 화재를 방지하고 시간을 알리며 순라를 관장했던 관청.
[내용]
조선시대 순청(巡廳)의 정확한 창설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초기부터 치폐를 거듭하며 존속되었던 기구였다. 조선초기 감순청(監巡廳)은 태조대부터 설치되었는데, 최고 지휘관인 감순총제(監巡摠制)가 군사의 순라(巡邏)를 총괄하였다. 1465년(세조 11) 순청이 좌우(左右) 2소(所)로 나누어진 후, 각 순장(巡將) 1인과 감군(監軍) 1인이 동시에 순찰을 점검하였다. 순장은 문·무신 및 중인(中人)과 서얼(庶孼) 출신 가운데 선출되었다. 감군은 선전관(宣傳官)·병조(兵曹)·진무소(鎭撫所)·낭청(郎廳) 중에서 한 사람을 국왕이 수점하여 선출하였다. 좌·우순장과 감군은 신시(申時: 오후 4시)에 직접 어패(御牌)와 군호(軍號)를 받은 다음 해당 초소에 나아가 분군(分軍)한 후, 인정(人定)부터 파루(罷漏)까지 순검(巡檢)하였다. 순청의 순라(巡邏)는 군사를 3번으로 나누어 초경~2경은 1번이, 3경은 2번, 4~5경은 3번이 담당하였고, 5경이 지나면 순청으로 돌아와 휴식하다가 날이 밝으면 해산하였다.
한편 중종대 포도청(捕盜廳)이 창설되어 치안 활동을 전담하면서 순청이 담당했던 기능과 역할이 상당 부분 이관되었다. 따라서 순청의 위상은 포도청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포도대장이 해이해진 상하순청(上下巡廳)의 군사를 정비하고 매복에 동원시키는 등 포도청이 순청 군사를 관리하기도 하였다. 이후 순청은 포도청과 야금(夜禁) 활동을 공조하지만 순청은 야금 활동에 관한 총괄 업무를 담당하였고, 포도청은 실무를 관장하였다. 1894년(고종 31) 좌·우순청(左右巡廳)은 좌·우포도청, 오부(五部) 등과 함께 경무청(警務廳)으로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