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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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紅夷砲)

서지사항
항목명홍이포(紅夷砲)
용어구분용어용례
상위어화포(火砲), 화기(火器)
관련어화총(火銃), 총포(銃砲), 총통(銃筒), 천자총통(天字銃筒), 지자총통(地字銃筒), 승자총통(勝字銃筒), 화창(火槍), 대완구(大碗口), 호준포(虎踆砲), 불랑기(佛狼機), 화약(火藥), 군기시(軍器寺), 화기도감(火器都監), 포수(砲手), 남한산성(南漢山城)
분야정치
유형물품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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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30년(인조 8) 명나라에서 조선에 도입된 16세기 유럽형 대포.

[내용]
홍이포는 유럽에서 만든 대포를 지칭하는 말로 16세기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명나라에 소개되었으며, 당시로서는 최신형의 대형 화기였다. 인조대 당시 정두원(鄭斗源)이 명나라에 진주사(陳奏使)로 다녀오면서 천리경(千里鏡)·서포(西砲)·자명종(自鳴鐘)·염초화(焰硝花)·자목화(紫木花) 등을 가져올 때 홍이포와 홍이포의 제본(題本)을 가져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인조실록』 9년 7월 12일].

홍이포의 특징은 기존 화포와 총통들의 포열이 전장부와 후장부가 균등한 지름인 데 반해 홍이포는 전장부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포열의 지름이 발사구에 가까울수록 작다는 것은 후장부에 장약된 화약의 폭발력을 더 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그러므로 홍이포의 사거리와 속도가 조선의 총통이나 중국의 화기보다 강했던 것이다. 인조대 이후 홍이포는 국내의 군영에서 자체 제작이 가능하였다. 영조대 훈련도감에서 홍이포 2개를 제작하였는데, 탄환 도달 거리가 10여 리였다[『영조실록』 7년 9월 21일].

[용례]
辛巳 訓鍊都監言 本局新備銅砲五十 紅夷砲二 所載車五十二輻 而銅砲行丸 爲二千餘步 紅夷砲行丸 爲十餘里 此實緩急可用者 紅夷砲 卽我國新制 進備睿覽 請紀監蕫者勞 上許之[『영조실록』 7년 9월 21일]

[참고문헌]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 2004.
■ 허선도, 『조선시대 화약병기사 연구』, 일조각, 1994.

■ [집필자] 이왕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