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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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변위(鎭邊衛)

서지사항
항목명진변위(鎭邊衛)
용어구분용어용례
관련어토관(土官), 영변(寧邊)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평안도(平安道)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에 설치된 토관서반(土官西班)의 위호(衛號).

[내용]
영변에 토관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1429년(세종 11)이었으며, 이때 토관서반을 진변위라고 칭하고 3령(領)을 두었다. 그리고 1령마다 사직(司直) 1명, 부사직(副司直) 2명, 사정(司正)·부사정(副司正) 각각 3명, 대장(隊長) 10명, 대부(隊副) 20명을 두었다. 그 뒤 몇 차례 변화를 겪으면서 마침내 『경국대전』에서는 정5품 여직(勵直)·종5품 부여직(副勵直) 각각 1명, 정6품 여과(勵果)·종6품 부여과(副勵果)·정7품 여정(勵正)·종7품 부여정(副勵正) 각각 2명, 정8품 여맹(勵猛)·종8품 부여맹(副勵猛) 각각 3명, 정9품 여용(勵勇)·종9품 부여용(副勵勇) 각 5명으로 정해졌다.

[용례]
命下兵曹 與政府六曹同議 議云 土官依鎭北衛例 別立三鎭 稱鎭邊衛 每一領 司直一 副司直二 司正副司正各三 隊長十 隊副二十[『세종실록』 11년 3월 26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李載龒, 『朝鮮初期社會構造硏究』, 一潮閣, 1984.
■ 李章熙, 「朝鮮初期 土官武職의 性格」, 『韓國史論』7, 國史編纂委員會, 1981.
■ 吉田光男, 「15世紀朝鮮の土官制 - 李朝初期地方支配體制の一斷面-」, 『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 [집필자] 윤훈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