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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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북위(鎭北衛)

서지사항
항목명진북위(鎭北衛)
용어구분용어용례
관련어토관(土官)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영안도(永安道) 영흥부(永興府)에 설치된 토관서반(土官西班)의 위호(衛號).

[내용]
영흥에 토관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1369년(고려 공민왕 18)이었다. 전신이라고 할 수 있던 화주목(和州牧)을 화령부(和寧府)로 승격하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조선에 들어와 1393년에 영흥부로 개칭되었다. 1407년(태종 7)에 의정부의 건의로 영흥부의 토관과 지록(地祿)의 과수(科數)를 정하였다. 이때 서반은 진북위로 일령(一領)·이령(二領)·삼령(三領)에 각각 중낭장(中郞將) 1명, 낭장(郎將) 2명, 별장(別將) 3명, 산원(散員) 4명, 대장(隊長) 5명, 대정(隊正) 15명, 권지대정(權知隊正) 15명으로 정했다. 지록은 5품은 1명에게 6결, 6품 5결, 7품 3결 50부, 8품 2결 50부, 9품 1결 50부씩을 주도록 했다. 그리고 권지대정은 도목(都目)에서 천전(遷轉)되어 실차(實差)를 받은 뒤에야 즉, 각 품계의 정해진 숫자 안에 들어가는 정식 관원이 된 뒤에 녹을 준다고 했다. 그 뒤 몇 차례 변화를 겪고서 드디어 정5품 여직(勵直)·종5품 부여직(副勵直) 각각 1명, 정6품 여과(勵果)·종6품 부여과(副勵果)·정7품 여정(勵正)·종7품 부여정(副勵正) 각각 2명, 정8품 여맹(勵猛)·종8품 부여맹(副勵猛)·정9품 여용(勵勇) 각각 3명, 종9품 부여용(副勵勇) 4명으로 정하였다.

[용례]
西班 鎭北衛一領二領三領 各置中郞將一, 郞將二, 別將三, 散員四, 隊長五, 隊正十五, 權知隊正十五 隊長長[『태종실록』 7년 9월 1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李載龒, 『朝鮮初期社會構造硏究』, 一潮閣, 1984.
■ 李章熙, 「朝鮮初期 土官武職의 性格」, 『韓國史論』7, 國史編纂委員會, 1981.
■ 吉田光男, 「15世紀朝鮮の土官制 - 李朝初期地方支配體制の一斷面-」, 『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 [집필자] 윤훈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