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예도는 환도 형태의 군도이나 끝이 매우 뾰족하다. 일명 단도라 한다. 칼날 길이는 3척 3촌, 자루 1척, 무게 1근 8량으로 본국검과 같은 규격이다. 예도의 유래는 당 태종이 검사 천 명을 호위병으로 거느리고 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의하면 중원에서 그 기법을 구하려 했으나 얻지 못했는데, 조선에 그 세법이 전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무예로서의 예도는 임진왜란 이후 단병무예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되어 조선군의 주요 무기로 활용되었다. 1749년(영조 25)에 예도는 편곤(鞭棍)·죽장창(竹長槍)·기창(旗槍)·왜검(倭劍)·교전(交戰)·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쌍검(雙劍)·월도(月刀)·협도(挾刀)·권법(拳法) 등의 무예와 함께 무예 18기로 정립되었다. 이후 1790년(정조 14)에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는 기존의 무예 18기에 마상월도(馬上月刀)·마상편곤(馬上鞭棍)·마상곤봉(馬上棍棒)·격구(擊毬)·마상재(馬上才)·마상쌍검(馬上雙劍) 등 6기를 추가하여 무예 24반으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