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연군(煙軍), 연호군(烟戶軍)이라고도 한다. 고려후기에 왜구의 침입이 전국 각지에 걸쳐 광범위하게 자행되면서 기존의 부대만으로는 제압이 곤란하였다. 이로 인해 여러 형태의 부대가 속속 조직되어 투입되었다. 그 가운데 외방 각 도에서 인정(人丁)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선발된 사람들로 조직된 원정별초(原定別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반 농민들을 대상으로 해서 징발하여 부대를 편성하기도 했다. 세대마다 무조건 1명의 남정(男丁)을 징발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연호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심지어 노자(奴子)들까지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그것은 1378년(고려 우왕 4)에 각 도에 익군(翼軍)의 조직을 구상하면서 인리(人吏)·역자(驛子)와 관시(官寺)·창고(倉庫)·궁사(宮司)의 노(奴)와 사노(私奴)로서 구성하게 한 것으로 말미암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지속되었는데, 대규모의 토목 공사를 벌이면서 동원하였다. 하지만 이 시절에는 호적에 의거한 인력 동원이었기 때문에 군적(軍籍)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군역 징발과는 성격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