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처음에는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보군(步軍) 중에서 무예가 있는 자 약간 명을 뽑아서 말을 주어서 마병(馬兵)으로 편성하였다. 그 뒤에 한량(閑良) 중에서도 선발하였다. 수솔마병(隨率馬兵)이라고 불리워지다가->불리다가 1710년(숙종 36) 훈련대장 이기하(李基夏)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별무사로 고쳤다. 훈련도감에는 모두 68명이 있는데 10명은 중군(中軍)에 속하고, 20명은 좌·우별장(左·右別將)에 나누어 속하고, 4명은 좌·우천총(左·右千摠)에 나누어 소속되었다. 금위영(禁衛營)에는 모두 30명으로 중군과 각위에 나누어 속해 있었다. 어영청(御營廳)에는 모두 30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중군에 10명이 소속되었다.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해적(海賊)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외방에도 설치하였다. 우선 평안도, 황해도와 강원도에 두었다. 영조 때에는 영남 지방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경기수영(京畿水營)에도 설치했다. 군영의 경우에는 대장소(大將所)나 중군소(中軍所)에 소속되어 호위나 사환 등의 임무를 맡았으며, 궁궐 밖의 순찰과 감독, 진(鎭)과 둔(屯)의 전답에서 세를 징수하거나 환곡을 거두는 일, 한성부 금송군(禁松軍)에 배속되어 산지기하는 일, 입직(入直) 등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