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처음에는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의 군병(軍兵) 중에서 무과에 급제한 자를 뽑아서 설치하였다. 좌사(左司)의 전초(前哨)에 속하게 하고서 목사(牧使)와 부사(府使)를 지낸 사람을 골라서 초관(哨官)으로 임명하여 통솔하도록 했다. 즉 일반 군병 가운데 무과에 급제한 자를 구분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하였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의하면 초관 1명이 별기대 2명과 마병 53명을 영솔하여 남영(南營)에 입직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 뒤에 금위영(禁衛營) 등에도 설치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1811년(순조 11) 평안도 농민전쟁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