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관 속에 까는 나무판재로 7개의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는 송판을 이르는 말.
[내용]
칠성판의 시원은 전한(前漢) 때 왕망(王莽)이 북두칠성의 위엄을 빌려 군대를 압복(壓服)시키기 위해 5석이나 되는 구리로 두자 반 정도의 북두(北斗)의 모양을 만들어 ‘위두(威斗)’라 하고, 자신이 출입할 때마다 사람을 시켜 지고 따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위두를 묘지에 묻는 것은 지하의 사귀(邪鬼)를 누르기 위함이다.
칠성판은 관을 만들 때 함께 만들며, 크기는 관 속에 들어갈 정도로 하고, 두께는 약 1㎝에서 1.5㎝ 정도의 송판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7개의 구멍을 뚫는다. 구멍은 대개 동그스름하게 끌이나 칼을 이용해 뚫으며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 입관할 때 관속 맨 아래에 차조를 태운 재[秫灰]를 약 5㎝ 정도 깐 다음 그 위에 칠성판을 놓고 시신을 안치한다.
국상 때 왕과 왕비의 재궁에 넣는 칠성판의 길이와 넓이는 관의 밑면 크기에 준하고, 두께는 5푼이고 북두칠성의 형상과 같이 7개의 구멍을 뚫는다. 칠은 옻을 쓰며, 재궁처럼 안팎에 각각 100번을 칠하고, 해마다 한 번씩 칠하고 붉은 광목에 종이를 배접한 것을 안팎에 바른다.
관속에 칠성판을 까는 것은 죽음을 관장하는 북두신(北斗神)에 빌어 구제받기 위한 것이다. 이는 방상(方相)을 이용해 무덤 속의 잡귀와 부정을 쫒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