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교대는 상복에 매는 허리띠로 교대를 맨 후 요질(腰絰)을 맨다. 참최교대는 마승(麻繩)으로 만들고, 자최교대는 포(布)로 만들며, 내상(內喪)일 때에도 포를 쓴다. 요질과 다른 것은 허리에 두른 후 양 가닥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있는 착용법을 보면, 참최교대는 마승 한 가닥을 반이 되게 구부려 그 길이가 한 자가 더 되도록 두 가닥을 합친 후 허리에 두른다. 혁대와 같이 양 고가 합쳐진 가운데로 끝을 넣은 다음 당겨서 허리둘레에 맞게 고정시킨다. 교대는 요질의 아래에 둔다. 그 크기는 요질에 비해 비교적 작다. 자최교대는 포로 만드는데 거칠고 섬세함은 각각의 복제에 맞게 한다고 하였다.
실제 교대를 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 번의 논의가 있었다. 1721년(경종 1) 국왕의 교대에 연포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이 있었으며[『경종실록』 1년 6월 4일], 1776년(정조 즉위) 연거대(燕居帶)를 개정하자는 유생 정재관(鄭在寬) 등의 상소도 있었으나 참최교대와 자최포대는 법제가 명확하게 되어 있으므로 불가하다고 하였다[『정조실록』 즉위 3월 16일 2번째기사]. 이 외에도 1919년에도 왕전하의 참최 3년복에는 생마로 만든 교대를 하였으며, 연제(練祭)를 지낼 때에는 약간 거친 연포를 사용하여 교대를 만들었다[『순종실록부록』 12년 1월 27일].
[용례]
王殿下 斬衰三年 衣裳用極麤生布 不緝邊 中衣承衰服者 用略麤生布 緝邊 冠用略麤生布以麻繩爲武及纓 巾承衰冠者 用略麤生布 首絰 腰絰 絞帶竝生麻以麻繩爲首絰腰絰繫(중략) 十三月 練祭 絞帶用略麤練布[『순종실록부록』 12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