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및 특징]
습은 운명한 다음 날 행한다. 습은 시신을 향물 혹은 쑥물로 정결하게 씻기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작은 주머니에 넣고, 빗질을 한 후 반함(飯含)을 행한 다음에 수의를 입히는 절차이다. 예부터 습의는 천자는 12벌이고, 상공(上公)은 9벌, 제후(諸侯)는 7벌, 대부(大夫)는 5벌, 사(士)는 3벌로 정해져 있다.
국상(國喪) 때 왕의 습의는 7벌이다. 왕의 경우 습 할 때의 준비물과 절차는 내시(內侍)가 휘장 안에 습상(襲牀)을 설치하고, 요, 자리, 베개를 깔아놓고, 이어 옥대(玉帶) 1개, 곤룡포 1벌, 저사 답호(踏胡) 1벌, 철릭(天翼) 1벌을 먼저 놓은 다음 나단령(羅團領) 1벌, 답호 1벌, 철릭을 1벌 놓는다. 그 다음에 홍저사 원령(圓領) 1벌, 철릭 1벌, 흰 베로 만든 이두(裏肚) 1벌, 흰 베로 만든 적삼 1벌, 흰 베로 만든 바지 2벌, 흰 베로 만든 버선 1켤레를 놓는다. 그 위에 아홉 겹으로 옷을 갖추어 입힌다. 또 함에 망건, 충이(充耳) 2개, 멱목(幎目) 1개, 악수(幄手) 2개, 신 1켤레를 함에 담고, 금모(錦冒)와 보쇄(黼殺)를 함에 담아 상 위에 놓는다.
목욕이 끝나 가면 신하들이 입시하고, 내시가 상을 들고 들어가 욕상(浴牀) 서쪽에 놓으면 종척(宗戚)이 시신을 그 위에 옮기고서 옷을 입히고, 이불로 덮는다. 이어 내시가 욕상을 치우고 시신이 누워 있는 상을 한가운데로 옮기고 나서 머리가 남쪽으로 향하게 하고 병풍과 휘장을 친다. 머리를 남쪽으로 두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용례]
命卞季良郭存中護喪 以驪川君閔汝翼前府尹李種善及卞季良爲殯殿都監提調 沐浴襲飯含訖 乃設襲奠[『세종실록』 2년 7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