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추대한 이성계 등 9명을 대상으로 1389년(공양왕 1) 12월에 책봉한 공신.
[내용]
1389년(창왕 1) 11월에 대호군 김저(金佇)가 우왕의 밀지를 받고 이성계를 제거하려다가 발각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성계 등의 세력은 이른바 폐가입진의 명분으로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왕위에 앉혔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공양왕은 우왕과 창왕을 베고 자신을 추대한 이성계 등 9명을 중흥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최고의 포상을 받은 이성계는 화령군개국충의백(和寧君開國忠義伯)에 봉작되었고 식읍 1,000호에 식실봉 300호, 전 200결, 노비 20구를 받았다. 그다음의 포상을 받은 심덕부는 청성군충의백(菁城君忠義伯)에 봉작되었고 전 150결, 노비 15구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지용기 등 7명은 충의백에 봉작되었고 전 100결, 노비 10구를 받았다. 중흥공신은 9명이라 구공신이라 불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