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보사공신(保社功臣)

서지사항
항목명보사공신(保社功臣)
용어구분용어용례
상위어공신(功臣)
하위어분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 분충효의병기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保社功臣), 분충효의보사공신(奮忠效義保社功臣)
관련어허견(許堅)의 역모,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분야정치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허견과 복선군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숙종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1680년(숙종 6) 남인인 허견·복선군 등이 역모를 도모한다는 서인인 김석주의 고변으로부터 시작된 옥사를 마친 후 이루어진 공신책봉이었다. 이를 계기로 남인에서 서인이 정권이 바뀌었다. 대출척 직후인 5월에 허견과 복선군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보사공신 6명이 책봉되었다. 1등은 분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이라 하였는데 김석주·김만기 등 2명이었다. 분충효의병기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保社功臣)이라 불린 2등은 이입신 1명이었으며, 분충효의보사공신(奮忠效義保社功臣)이라 불린 3등은 남두북·정원로·박빈 등 3명이었다. 그러나 보사공신은 숙종대에 서인과 남인 사이에 환국이 발생할 때마다 책봉과 삭제가 반복되었다. 남인이 집권하면 삭제되었다가 서인이 집권하면 다시 책봉되었던 것이다.

[용례]
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 一等金萬基金錫冑 二等李立身 三等南斗北鄭元老朴斌 錫冑加輔國爲淸城府院君 立身加資憲爲陽興君 南斗北爲宜豐君 元老超嘉善爲東原君 朴斌爲密城君[『숙종실록』 6년 5월 18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 [집필자] 신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