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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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는 원래 조선초기 전투 전 적군의 동정을 살피거나 경계하고 아울러 여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대별로 사후를 내어 중군(中軍)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존재였다. 이후 성종대에는 병조(兵曹)와 도총부(都摠府) 등 각 아문(衙門)에서 군문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사후를 두었다. 병조, 도총부의 위장(衛將), 부장(部將), 선전관(宣傳官)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시종 등의 역할을 하는 정병(正兵) 등의 군사들을 사후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훈련도감의 마병(馬兵) 7초(哨) 중 각 초마다 사후가 5명씩 배치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