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사초군(莎草軍)은 산릉(山陵)을 새로 조성하거나 수리할 때, 산릉에 떼를 입혀 잘 가다듬는 일을 하는 역군이었다. 조선후기 산릉역에서는 도성 주민이 상여를 메는 여사군(轝士軍)으로 징발되어 사초군의 일까지 수행하는 일이 많았다. 대체로 단기간의 부역노동에 속하였다. 산릉역일 경우, 사초군의 수는 1,000명에 달하였으며, 산릉을 수리하는 역사에서는 300여 명을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공인계(貢人契)에서 자원하여 사초군의 일을 부담하는 일도 있었다. 1673년(헌종 14) 효종 영릉(寧陵) 천릉역(遷陵役)의 예를 보면, 능상(陵上)에 깔 사초 6,000장을 모화관(慕華館)에서 떼어 올 때, 농민 800명을 징발하되, 모군의 예에 따라 품삯을 지불하였고, 이를 능상으로 옮겨 오는 일은 상번군(上番軍)인 도방군(到防軍)을 시켜 사역하였다. 모두 52,000여 장의 사초가 조달되었으며, 여기에 면포 520여 필이 지불되었다. 사초를 덮는 일을 주도하는 사초장(莎草匠)은 산릉도감 삼물소(三物所)의 장인을 불러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