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민간에서 요역을 징발하여 관서의 물자를 수송하는 일 등에 동원하는 경우, 부지군(負持軍)이라 이름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후기 도성의 주민이 부담하는 요역인 방역(坊役) 중에서 가장 괴로운 일로 여겨졌다. 짐을 나르거나, 왕의 거둥 시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부지군은 지방에서도 징발되었다. 1712년(숙종 38) 장령 정필동(鄭必東)은 당시 통신사 일행의 방물(方物)을 서울로 수송하는 일에 부산첨사가 동원하는 부지군의 수가 1,000명이 넘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신사 일행의 복물(卜物)은 각 고을로 하여금 말을 세 내어 운반하도록 하였으나, 그 외에 사람이 져서 운반해야 할 방물은 부지군 1,000여 명을 징발해서 멀리까지 운반하도록 하였으므로 지역민의 고통이 컸음을 지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