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재해를 입은 지역을 피해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겼는데, 곡식이 잘 여물지 않아 작황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
[내용]
대동(大同)·군보비(軍保米)·신구환향(新舊還鄕)·어염선세(魚鹽船稅) 등 다양한 항목으로 세를 거두어들일 때, 그해의 흉황(凶荒), 즉 수확의 정도에 따라 그해에 거둘 항목의 미(米)·포(布)·전(錢)의 양을 줄여서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도를 표시하는데 이용되었다. 이때 등급을 매기는 것을 분등(分等)이라 하였다. 해마다 풍흉에 따라 달리 등급을 매기는 정도가 달랐다. 각각의 등급에 따라 그해에 거두어들일 양에 대하여 일정 비율을 적용하여 줄이거나 혹은 납부 기한을 미룰 수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본도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재실분등장계(災實分等狀啓) 혹은 분등장계(分等狀啓) 등의 내용으로 장청(狀請)하면, 담당 기관인 비변사가 그 내용을 초기하여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왕이 최종적으로 윤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등급은 그 정도에 따라 우심(尤甚)·지차(之次)·초실(稍實) 등 3등급으로 나뉘었다. 우심은 우우심과 우심으로 세분되어 4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구분되기도 하였다. 우우심은 다시 최우심(最尤甚)으로 바뀌어 시행되었다.
환곡을 대상으로 1677년(숙종 3) 우심읍(尤甚邑)에 대한 조치를 보면, 분등에 따라 우심읍은 구미봉(舊未捧), 즉 구환(舊還)을 2/3, 신환(新還)을 1/3로 줄여 거두도록 하였으며, 신환곡은 우심읍은 1/3, 지차읍은 1/2을 거두도록 한 예가 있었다.
우심읍은 배소(配所), 즉 유배지로도 지정하지 않았다. 이는 민들에게 폐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측면과 함께, 유배된 자들에 대한 배려도 함께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