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토호·양반·영저리들이 환곡의 분급 규정에 따라 환곡을 받지 않고 수령이나 감사와의 친분 관계를 빌미로 환곡을 따로 받았던 것.
[내용]
별환은 본래 지역 거주민이 아니지만 장례를 치러야 할 사람이 통내(統內)에 노비나 친척으로 있을 경우 통수(統首)의 보단자(保單子)를 관에 제출하고 받는 환곡을 말하였다. 이런 환곡은 감영이 관리하는 환곡, 즉 감영곡으로 18세기 전반까지는 왕조 정부의 규제를 크게 받지 않아서 감사가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었다. 감영곡은 떠돌아다니다가 객지에서 임시로 사는 사대부를 진휼하기 위하여 쓰기도 하였다. 송시열도 궁핍할 때에는 이런 종류의 환곡을 받아 생활하다가 제때에 갚았다고 한다.
그러나 별환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향촌 내의 세력 있는 자들로서 많은 양의 환곡을 받아 내어 모리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심한 경우 이들은 환곡을 상환하지 않아서 환곡의 난봉(難捧)·미봉(未捧)의 폐단을 초래하였다. 또 환곡을 상환할 시기에 도망함으로서 이징(里徵)·족징(族徵)의 폐단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영조 연간에 별환을 금지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