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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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景陵)

서지사항
항목명경릉(景陵)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능원(陵園)
관련어헌종(憲宗), 효정왕후(孝定王后), 효헌왕후(孝顯王后)
분야왕실
유형능 원 묘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능.

[개설]
헌종과 두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삼연릉(三連陵)으로, 오늘날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내에 위치해 있다. 헌종은 요절한 효명세자(孝明世子)의 아들이다. 1830년(순조 30)에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 1834년 11월 18일에 즉위하였다. 1849년(헌종 15) 6월 6일에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승하하자, 효현왕후의 능 오른쪽에 묘향(卯向)으로 장사 지냈다.

헌종의 원비(元妃)인 효현왕후(孝顯王后) 김씨(金氏)는 김조근(金祖根)의 딸로, 1837년(헌종 3) 왕비에 책봉되었다. 1843년(헌종 9)에 승하하자, 동구릉 안 건원릉(健元陵) 서쪽에 경좌갑향(庚坐甲向)으로 장사를 지내고 능호를 경릉(景陵)이라 하였다.

계비인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洪氏)는 홍재룡(洪在龍)의 딸로, 효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44년(헌종 10)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후 1904년(광무 8)에 덕수궁 수인당(壽仁堂)에서 승하하자, 효현왕후의 능 왼쪽에 경좌갑향으로 합장하였다.

[조성 경위]
효현왕후가 승하하자 시호를 효현, 능호를 경릉이라 하고, 여러 산릉 후보지를 세 번에 걸쳐 간심(看審)한 뒤 목릉(穆陵)의 옛터로 확정하였다. 효현왕후의 장지로 봉표한 곳은 원래 선조(宣祖)의 능인 목릉이 있던 자리였는데, 1632년(인조 8)에 건원릉 동쪽으로 천장하여 비어 있었다. 산릉도감(山陵都監)의 총책임자인 총호사(總護使)는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조인영(趙寅永)이 맡았으나, 두 달 만에 좌의정 권돈인(權敦仁)으로 바뀌었다.

그 뒤 헌종이 승하하자 묘호는 헌종, 능호는 숙릉(肅陵)으로 정하고, 총호사에는 영중추부사 조인영을 임명하였다. 그런데 효현왕후의 능이 십전대길(十全大吉)의 제일 길지로 낙점이 된 까닭에[『철종실록』 즉위년 7월 6일], 왕후와 합장하고 능호를 그대로 경릉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 왕비가 먼저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르고 이후 왕이 승하했을 때 왕을 왕비의 능에 합봉(合封)한 사례는 후릉(厚陵), 헌릉(獻陵), 영릉(英陵), 명릉(明陵) 등이 있었는데, 이때 먼저 정한 능호를 그대로 사용한 전례를 참고한 것이다. 다만 선조의 경우에는 먼저 조성한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능은 유릉(裕陵)이었으나, 나중에 선조를 합장하면서 목릉으로 능호를 바꾸었다.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는 1904년 1월 2일(양력)에 승하하였다. 이에 특진관(特進官) 윤용선(尹容善)을 총호사로 임명하고, 산릉 자리를 경릉 경내에서부터 살피도록 하였다[『고종실록』 41년 1월 2일][『고종실록』 41년 1월 7일][『고종실록』 41년 1월 18일]. 그리고 이듬해 1월 29일에 효현왕후의 능 왼쪽에 합장하였다.

[조성 상황]
처음 조성된 효현왕후의 능을 중심으로, 왼쪽에 헌종의 능을 조성할 때는 좌측 곡장과 석물을 옮기고, 오른쪽에 효정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는 우측의 석물들을 뒤로 물려서 배치하였다. 최종적으로 능상은 상·하로 구분하여, 상계(上階)에는 곡장을 두르고 봉분 좌·우에 망주석 1쌍을 두었으며, 봉분마다 혼유석을 놓았다. 하계(下階)에는 세 봉분의 중앙에 장명등을 1개 배치하였고, 문인석·무인석 각 1쌍 및 마석(馬石) 2개를 함께 배열하였다. 봉분은 병풍석을 설치하지 않고 난간석만 연결하여 두르고, 좌·우에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을 각각 4개씩 총 8개를 배치하였다.

[변천]
1879년(고종 16)에 여러 능의 비각과 정자각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과정에서 경릉의 비각과 정자각도 수리하였다. 이후 1908년(융희 2) 5월 11일에는 헌종을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로 추존하고, 표석의 음기(陰記)를 고쳐 세웠다.

[관련 사항]
경릉(景陵)은 고려 11대 왕 문종의 능호이기도 하다. 고려 경릉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법창동에 있는데, 1904년에서 1906년(광무 10) 사이에 다른 고려 왕릉들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도굴되었다. 이에 조정에서 이를 수리하고 치제(致祭)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고종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한편 경릉은 조선 세조의 능호로 거론되기도 했다[『예종실록』 즉위년 9월 24일]. 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능호도 경릉으로 정하였으나,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에 쌍릉으로 조성하게 되면서 별도로 능호를 쓰지 않았다[『순조실록』 5년 1월 18일][『순조실록』 5년 1월 28일].

[참고문헌]
■ 『[헌종]경릉산릉도감의궤([憲宗]景陵山陵都監儀軌)』
■ 『[효정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孝定王后]景陵山陵都監儀軌)』
■ 『[효현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孝顯王后]景陵山陵都監儀軌)』

■ [집필자] 이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