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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문장(門長)은 문중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종인(宗人) 중에서 항렬(行列)이 높으면서 학문과 덕망을 갖춘 자를 선출한다. 문중 조직이 소문중(小門中)·대문중(大門中)·파문중(派門中)으로 분화되면서 각각 문중에는 문장을 두었고, 대문중과 소문중이 차별화되면서 문장 역시 대문장(大門長)과 문장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문중 조직은 17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보편화된다. 종법(宗法) 의식이 심화되면서 기제(忌祭)를 넘어서는 묘제(墓祭)를 치제하기 위해 종인들의 결속이 요구되면서 문중 조직이 가시화되었다. 문중 조직은 사회·경제적 발달로 신분 질서가 동요하면서 양반 사족 자신들의 입지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중 조직의 대표를 문장이라 하였다.
문중은 종인들의 결속을 도모하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족규(族規)·종약(宗約)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규약의 제정과 개정은 종인들의 총회에서 마련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는 제례의 거행, 족보의 편찬, 현조(顯祖)의 선양 사업 등 종인들의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제반 운영 규정이 포함되었으며, 아울러 문중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직임(職任) 조직과 재정 확보 방안이 마련되어 있다는 특징을 가졌다.
문장은 문중의 대표적 지위에 있지만 종가(宗家)의 종손(宗孫) 역시 문중의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정조실록』 6년 1월 14일]. 이 점에서 문장과 종손은 문중의 운영을 둘러싸고 협조적이면서도 때로는 서로 견제하는 입장에 놓이기도 했다. 문장이 종인의 전체적 입장을 반영한다면 종손은 종가의 입장에 치우쳐 있는 데서 오는 역할 관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변천]
소종(小宗) 가계의 조직인 족계(族契) 형태에서 확대·재생산되면서 형성되는 문중 조직은 18, 19세기에 이르면서 활발한 활동 양상을 보인다. 족계의 활동은 당초 종법 의식이 심화되어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면서 비롯되었으며 일향(一鄕) 단위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현조와 파조(派祖) 내지 입향시조(入鄕始祖)의 묘제를 치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문중 활동의 활발한 양상은 문집(文集)·족보(族譜)의 편찬과 현조의 유적 정비, 문중서원(門中書院)의 건립 등에서 살필 수 있으며, 이러한 문중 활동에는 응당 문장과 종손이 그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문헌록(文獻錄)과 족보의 편찬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사업 특성상 문장과 종손은 그에 소용되는 재원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한편 문중서원은 기존의 서원을 문중화하든 새로 건립하든 자신들의 현조를 봉사한다는 특성을 가져 현조의 직계 후손은 문장·종손과 함께 그 역할을 이행하였다.
문중 조직은 주변 도시와 연동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즉 일향 단위에서 결성되었던 문중 조직이 주변 도시에 이주하여 살아가는 족인을 포용하거나, 주변 도시에 이미 결성되어 있는 동족의 문중 조직과 연합하여 활동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중 조직의 연합 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 대개는 관향지(貫鄕地)의 문중 조직이 중심 역할을 하게 되며, 이 경우에 대종회가 구성되면서 그 대표적 인물로 대문장이 선출되어 문장과 차별성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 김경숙, 「조선 후기 문중통문의 유형과 성격」, 『고문서연구』19, 2001.
■ 김현영, 「조선 후기 친족의 결속과 갈등의 한 양상 : 대구 월촌 단양 우씨 종계 관련 문서의 분석」, 『고문서연구』16·17, 2000.
■ 이해준, 「조선 후기 ‘문중화’ 경향과 친족 조직의 변질」, 『역사와 현실』48, 2003.
■ 정승모, 「조선 후기 문중 형성과 문중계 운영 방식」, 『역사민속학』23,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