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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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례(瞻禮)

서지사항
항목명첨례(瞻禮)
용어구분용어용례
동의어축일(祝日)
관련어경당(經堂), 미사[彌撒], 예배(禮拜), 축일표(祝日表)
분야문화
유형의식 행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천주교회에서 거룩한 날로 정한 축일의 옛말.

[내용]
조선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신자들은 교회에서 주일(主日)이라고 정한 일요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의미의 축일(祝日)들을 모두 첨례(瞻禮)라는 한자식 표기로 표현하였다. 이 중에서 7일마다 돌아오는 주일의 의미를 조선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7일’이라고만 기록하였다. 이들 첨례를 날짜 순서대로 기록한 일종의 교회 달력이 첨례표인데, 사옥 때 이를 몸에 지니고 있다가 체포된 신자들에 대한 기록도 나타난다.

1794년(정조 18) 말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입국한 뒤로는 첨례 때 예배를 드리거나 천주교의 거룩한 제사인 미사[彌撒]를 봉헌했기 때문에 첨례가 때로는 예배·미사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또 조선에서 첨례를 위한 특정 장소인 경당(經堂) 즉 작은 천주당이 마련된 것도 주문모 입국 이후였다. 그러나 1801년(순조 1)의 신유사옥으로 인해 초기의 경당은 없어졌고, 1836년(헌종 2) 이후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새로운 장소에 경당이 마련되었다.

[용례]
罪人丁若鍾 一直以邪學謂正道 作天主晝像 間七日瞻禮以爲 天主大君也大父也 不知事天 生不如死[『순조실록』 1년 2월 26일]

[참고문헌]
■ 『사학징의(邪學懲義)』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崔奭祐, 「『邪學懲義』를 통해서 본 初期天主敎會」, 『교회사연구』2, 1979.

■ [집필자] 차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