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도열(桃茢)은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로 만든 빗자루이다. 『예기』 「단궁편(檀弓篇)」에 의하면, 도열은 맹세 의식이나 장례 때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거나 부정(不淨)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한 기능을 지닌 의물(儀物)이었다.
조선시대에 도열은 왕이 신하의 상사(喪事)에 문상(問喪)을 갈 경우 창과 함께 주로 사용되었다. 왕이 신하의 집에 들어서기 전에 왕을 호위하는 군사 4명이 창[戈矛]을 들고 앞장서서 인도하면 무당이 도열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왕이 빈소에 들어가기 전에 무당은 이 도열을 잡고 푸닥거리[祓除]를 행하였다. 의식이 끝나면 상가(喪家)에서 왕이 문상을 할 공간의 동서남북 사방에 도열을 놓았다.
도열을 들고 왕을 상가(喪家)에 인도한 이유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첫 번째는 왕이 상사에 임했을 때 거쳐야만 하는 절차의 하나로 인식했던 예법의 일종이라는 점과, 두 번째는 조선시대에 흉상은 곧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정화의 기능을 지녔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 도열의 도입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조선중기 이후 도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이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중신들의 상소에는 음사인 도열을 행하는 것을 금하거나 혹은 도열을 생략한 채 문상을 가게 한 관리를 벌할 것을 간언하는 내용도 있었다. 도열은 사회적인 인식 변화의 흐름에 의해 일정 기간 생략되었다가 또 다시 상사에 사용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선중기와 말기 이후에는 도열이 지니는 본래의 기능인 예법에 맞게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도열은 복숭아나무와 갈대가 지니는 벽사(辟邪)의 기능으로 인해 공간을 정화하고 부정을 제거하는 의미도 지닌다.
[형태]
도열은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를 그 재료로 하여 만든 빗자루 형태를 띤다. 이는 빗자루가 지니는 본래의 기능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열은 상사(喪事)가 행해지는 상가(喪家)에 있을지 모를 부정하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쓸어내어 그 공간을 정결하게 전환시켜 주는 기능을 지녔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민간에서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물리치는 것으로, 특히 동쪽으로 난 도동지(桃東枝)가 악귀를 쫓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숭아나무의 가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혹은 도장이나 무구 등을 만들어 귀신을 쫓는 데 사용해 왔다. 무속에서는 잡귀(雜鬼)가 들린 병자를 치료하는 치병의례(治病儀禮)나 귀신이 들려 헛소리를 하는 환자를 위한 축귀의식(逐鬼儀式)을 행할 때 복숭아나무로 만든 칼이나 활로 잡신이나 귀신을 쫓아 왔다. 복숭아나무 칼은 귀신이 있는 방향에 걸어두어 귀신을 위협하고 쫓는 기능을 하며, 활은 살을 막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내림굿을 할 때, 동쪽으로 난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쇠와 함께 실로 묶어 귀신을 병에 가둘 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