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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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부(元帥府)

서지사항
항목명원수부(元帥府)
용어구분전문주석
하위어중앙군(中央軍), 친위대(親衛隊), 시위대(侍衛隊), 호위대(扈衛隊), 진위대(鎭衛隊), 군무국(軍務局), 검사국((檢査局), 회계국(會計局), 기록국(記錄局)
동의어참모부(參謀部)
관련어군부(軍部), 군령(軍令), 군정(軍政)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대한제국 때 설치한 황제 직속의 최고 군 통수 기관.

[개설]
원수부는 1899년 설치되었다. 고종은 군을 직접 통솔하고, 군대 조직의 근대화에 힘썼다. 조직 구성면에서도 1894년 이전의 구식 군대의 잔재를 없앴다. 고종은 군사력 증강 정책에 따라 원수부를 최고의 군령 기관으로 하여 중앙군은 친위대 4,300명, 시위대 5,000명, 호위대 730명 등 1만여 명의 군사력을 갖추게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대한제국 군제 개편의 핵심은 황제 직할의 군 통수권의 계통을 확립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는 데 있었다. 기존의 군부는 군정(軍政)만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으로 개편되고, 군령(軍令)을 담당하는 원수부가 최고 군사 기구로서 군대를 통솔하는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는 몇 차례의 정변 기도에 많은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고종은 원수부를 통해 군대를 확실히 장악함으로써 황제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군대가 정변에 동원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

고종은 1898년 6월 29일 조칙에서 “각국 대원수의 예에 따라 짐이 육·해군을 통솔하니…… 규정을 군부로 하여금 의정하여 상주하라.” 하는 지시를 내렸다. 그 후 1899년 6월 22일 원수부 관제를 공포하며 황제의 군 통솔권 장악이 실현되었다. 황제가 대원수가 되어 군기를 총람하여 육·해군을 통령하고, 원수부는 국방과 용병·군사에 관한 각종 명령을 담당하였다. 또한 원수부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군부와 서울, 지방의 각 부대를 지휘·감독하게 되었다. 원수부는 의정부와는 별개의 기구로 설치되어 군사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하였고, 원수부 총장들은 의정부 대신과 대등한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조직 및 역할]
원수부는 국방 작전, 군대 편성, 군대 교육, 부대 검열, 군인 상벌(賞罰), 회계 등에 걸치는 광범위한 기능을 가졌다. 산하 기구로는 군무국, 검사국, 회계국, 기록국의 4국을 두었다. 원수부의 핵심 부서는 군무국과 검사국이었다. 군무국의 주요 사무는 군사에 관한 조칙과 공문을 군부와 중앙·지방 각 부대에 보내고 각 부대의 일기와 보도를 접수하여 개략적인 내용을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원수부의 군대 교육 감독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검사국에서는 매일 시위대에 속한 장교 중 1명을 위임하여 궁성 호위병과 중앙·지방 각 부대를 시찰케 하였다. 또한 심사 보고서를 원수인 황태자를 거쳐 대원수인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원수부는 각 진위대에 나가 영관(領官)과 위관(尉官)의 근무 태도, 병정 수, 군물 파손, 군과 민간의 분쟁, 지출 장부 등을 조사하고 시찰하였다.

[변천]
1900년 3월 원수부 관제가 다시 개정되면서 원수부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각 국장의 칭호가 총장으로 격상되었고, 민영환, 이학균, 조동윤, 이종건, 윤웅렬, 신기선 등 대한제국 정계의 실력자이자 황제의 측근 세력들이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들 각 총장은 직접 의정에게 청의(請議)할 수 있었으며 칙지를 받아 각부 대신에게 지령할 수 있었다. 또한 총장은 경무사나 관찰사, 재판소의 판사 이하에게 훈령이나 지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01년 4월 원수부에서는 다시 관제를 개정했다. 그 개정의 골자는 첫째, 원수부에 순사를 두어 각 군대의 군기와 복무 태도, 교육의 조정, 군량 등을 시찰·감독하게 하였다. 둘째, 순열사와 부사는 각국 총장 혹은 육군장관으로 위임하고 결과를 황제에게 아뢰게 하였다. 셋째, 순열사와 부사는 시찰과 감독 이후 의견을 각 단대장에게 훈시하게 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은 원수부의 군제를 변화시켰다. 원수부의 각 총장도 이근택, 구영조, 박제순, 현영운 등 친일적 인물로 교체되었다. 1904년 7월에는 군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개정안을 보면 원수부가 가졌던 모든 군령과 군정권을 군부에 환원시켰다. 일본은 12명의 군제 이정관에게 원수부 정리 작업을 착수하게 하고 1904년 9월 24일에는 원수부 관제를 개정하였다. 일본은 또한 같은 날 참모부를 설치하여, 군제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은 일본이 조종하는 참모관을 통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혜안, 2000.
■ 양상현, 「대한제국의 군제 개편과 군사 예산 운영」, 『역사와경계』61, 2006.
■ 조재곤, 「대한제국기 군사정책과 군사기구의 운영」, 『역사와현실』19, 1996.

■ [집필자] 김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