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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시종원은 1895년(고종 32) 4월 왕실의 시종(侍從), 시강(侍講) 기능을 맡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본래 조선시대에 승정원이던 기관이 1894년 승선원(承宣院)으로 계승되었다. 개화파 정부는 승선원의 왕명 출납 기능을 막고자 애썼고 그 결과 승선원이 다시 시종원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시종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이전 승정원, 승선원보다 권한이 약하였다. 그러나 개화파 정부가 무너지고 고종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시종원의 기능은 점차 확대되었으며, 특히 궁내 호위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종원의 호위 기능은 1907년까지도 유지되었으나 이후로는 비서감(秘書監)과 전의사(典醫司)의 역할 정도로 축소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시종원은 조선시대의 승정원, 갑오개혁기의 승선원을 계승하여 1895년 4월 궁내부 관제 제정 때 설립된 기구이다. 1895년 4월 새로운 궁내부 관제를 반포할 때 왕의 비서 기관으로 시종원이 신설되었다. 그 안에는 비서감(秘書監), 전의사(典醫司)가 속하게 하였다. 전체적으로 궁내부의 규모가 축소되었는데 시종원은 시강 업무가 주된 것이 되었고, 비서감은 문서 보존만을 담당한다고 규정되었다. 1895년 11월의 궁내부 관제 개정에서는 비서감이 시종원에서 독립하여 비서원이 되었는데, 이는 고종의 군주권이 회복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조직 및 역할]
1895년 4월의 궁내부 관제에서 시종원은 시종과 시강 등의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기구로 규정되었다. 조직은 칙임관인 경(卿) 1인, 시강 2인, 주임관인 부시강(副侍講) 1인, 시종 7인, 판임관인 시독(侍讀) 4인, 주사 2인, 시어(侍御) 8인이다. 이 가운데 시강 관련 업무는 11월 경연원(經筵院)을 다시 설치하면서 그곳으로 넘어갔다. 시종원의 역할은 초기에는 시종·시강·비서 기능 등이었는데 시강·비서 기능이 독립하면서 시종 기능만 남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시종원은 주로 제례 및 각종 친행(親行) 때의 예식 준비, 물품 마련, 장소 섭외 등을 담당했다. 그 외에 시종원의 역할에서 주목되는 것 중 하나가 궁내 호위 부분이다. 1897년 6월, 고종은 시종원에서 정예 군사를 뽑아 호위군이라 부르게 하고 시종 한 명을 총관(總管)으로 임명하였다.
[변천]
1905년 3월의 궁내부 관제 개정에서도 시종원은 시종, 의장(儀仗), 호위 업무를 맡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일제의 궁내부 축소 시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시종원 경은 오히려 내대신(內大臣)을 겸하여 국새와 어새(御璽)를 관리하고, 궁내부 특진관들을 그 아래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1907년 11월의 관제에서 내대신제는 폐지되었고, 호위에 관한 규정도 사라졌다.